정릉야책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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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야책_4호
야책문학 - 소설
이밥 아주 오래 전 우주는 거대한 새들의 세상이었고 새들은 어느 별에서 건 자신의 삶을 즐기며 온 우주를 돌아 다녔다. 어느 날 나(봉황 수컷 ‘봉’)는 태양을 삼키려던 (봉황 암컷) ‘황’에게 돌진하였다가 그만 그와 더불어 황홀경에 빠진다. 1억5천만년 후 황홀경에서 깨어보니 우리 외에 큰 새들이 하나도 없다. 지구화 – 새들이 모두 지구형 행성들에 모여들어 공룡이 돼버린 사건 – 때문이었다. 우리는 다른 큰 새들을 찾던 중, 어느 지구에서 까치를 만나고 까치는 그 간의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6. 멸종 – 까치와 황이의 문답 빅뱅 이후 우주는 각각의 별에서 쏟아내는 빛과 열을 따라 팽창을 계속해가며 팽창음을 만들어내는데 어찌나 그 소리가 아름답던지 우주의 누구라도 그 소리를 인지하게 되면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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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야책_4호
야책 문학 - 포토에세이
조성권 우리가 다른 것 중 제일 큰 하나는 좋아하는 계절이 다르다는 거였다. 나는 뜨거운 여름만 되면 온종일 몸이 쳐져 힘을 못 쓴다. 예전에는 꽤나 여름을 잘 견뎌낸 것 같은데 말이다. 반면 그대는 겨울이 힘들다고 했다. 겨울만 되면 잠이 쏟아지고 뼈까지 아프다곤 했다. 그렇다면 우리 이렇게 하자. 봄에는 둘 다 힘들어하는 게 없을 테니 마음 다해 사랑해보자. 재지 말고 아끼지 말고 쓸 수 있는 마음 다 써 사랑해보자. 그러다 꽃이 지고 여름이 오면 그대가 내 곁에 와주라. 나는 가벼운 옷차림 하나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가을에는 내가 알레르기로 힘들긴 하지만 봄이랑 비슷한 거쯤으로 해 두자. 낙엽 지고 겨울이 오면 내가 그대 곁에 더 많이 다가가 눈 앞에 서겠다. 그대 눈앞에 내가 발맞춰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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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야책_4호
야책문학 - 시 4
김채영 겨울나무야, 겨울, 봄, 여름, 가을 언제가 좋아? 견뎌야 한다면 난, 여름. 언덕위의 나무야, 산 속, 강 옆, 아파트 내, 시골 길 어디가 좋아? 그리운 이와 함께라면 난, 어디든. 동물원의 나무야, 동물, 식물, 새, 사람 누구의 방문이 좋아? 난, 말 못 해. 가시나무야, 장미, 벚꽃, 커피, 단풍 중 뭐가 좋아? 난, 꽃보단 열매 사과. 눈꽃 핀 나무야, 바람, 토네이도, 비, 햇빛 뭐가 좋아? 난, 소낙비. 므두셀라 나무야, 너의 나이테가 4900개 이상이라며? 나의 나이테는 52개야. 너의 삶은 옳았어.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기는 거. 텅 빈 가슴으로 사는 거 너의 빈 가슴이 많은 나이테를 지닌 비결을 말해주는 거지. 난 가슴을 비울 수가 없어. 텅 텅 비우고 싶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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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야책_4호
야책문학 - 시 3
이혜성 무채색의 시간들 무채색의 공간들은 항상 그 자리 그대로 언젠가 나 덮쳤던 그날 세상에서 가장 추웠던 날 세상에서 가장 시리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무너진 날 못내 아쉬워서 오늘도 쓰린 가슴 붙잡고 나는 사는 동안 한이 가득한 숨만 거칠게 내어 쉬며 어찌 날 두고 돌아서나 어찌 모질게 고개를 돌릴 수 있었나 모질게 돌아서 가는 길 내가 어른거려 헤매진 않았나 원망스러운 그대 마지막 모습 꺼내어 미워하다가 그대 또한 슬픔에 겨워 마음이 무거웠겠지 미어지는 온몸 힘주어 돌아섰겠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들로 나를 위로하오 그래도 그대는 안녕하는 방법을 알아서 그나마 마음 안아줄 수 있었겠소 내 세상이 무너졌던 그날이 다시 날 향해 고요하고도 거칠게 다가올 때 난 과연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을까 살아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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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야책_4호
야책문학 - 시 2
김진태 하늘은 큰 도화지 쪽빛 하늘 저편에 뭉게 구름 나타나서 생쥐도 그리고 얼룩 소도 그리고 호랑이도 그리네 싫어지면 다 지워버리네 하늘은 큰 도화지 이쪽 저쪽 하늘에서 뭉게구름 피워나 채송화도 피우고 봉숭아도 피우고 나팔꽃도 피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