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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야책_4호

차(茶)가 들려주는 이야기

김은희

 

 

 

한바탕 가을비가 스산히 내리더니 자연이 토해낸 단풍은 결국 떨켜를 땅에 떨어뜨린다.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나무가 

머금고 있는 수분 조절  비밀이 있다. 단풍나무들은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수분만 뿌리에 머금은  

아름답게 나뭇잎을 말려 죽인다. 죽음도  정도는 되어야 찬란한 죽음이라   있지 않을까?  세상이 가을빛으로 

들고 가을비마저 내리면 누구나 운치있는 곳에 앉아 따뜻한   잔의 여유를 갖고 싶을 것이다.

 

…. 참으로 오묘하다. 제각기 모양이 다른 100ml 안팎의  한잔에 철학을 가득 담고 있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차에 

대해 소박하게 얘기 하고 싶다. 차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4~5세기경에 만들어졌고 승려들 약용으로 마시기 

시작하다가 나중에 음료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차를  먹듯 마신다하여 다반사라는 말이 생겼다. 차를 마시는 

 점점 형식을 갖추게 되었고 급기야 다도라는 종교와 맞먹는 수준의 도에까지 이르게 된다.

 

 문화가 격상되면서 품격 있는 다기를 갖추기 위해 도자기가 만들어진다. 중국은 그리하여 우수한 도자기를 만드는 

차이나 왕국이 되었다. 차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웃나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중 본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중국에 유학  일본 승려들이 차나무를 가져다 심고 차를 전파하면서 일본인들은   잔에 역사와 철학, 

미학 정립시킨다. 일본에서 처음 차를 마시기 시작할 때에는 엄격한 수준 다도문화를 확립했었다. 일본이 갖고 

있는 모든 정신은 다도에서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창기 일본은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과 좋은 질의 흙이 없어 중국 잔을 선호했다. 하지만 중국 도자기는 너무 

화려하여 내면을 수양하는 다도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던  고려도자기를 접하 되었고 

 고려도자기의 은은함과 절제된 아름다움에 일본은 화들짝놀라게 된다. 16~17세기에 일본에서 유행한 찻사발은 

조선 막사발이었는데 고려다완, 이도다완이라 불린다. 이도다완은 그릇모양이 우물입구처럼 생겼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무명옷에 삶의 애달픔을 물레질하며 들어낸 막사발은 우리 선조들이 국그릇, 밥그릇, 막걸리사발로 쓰던 들이다. 

그런 이도다완  조선막사발 100여점이 지금도 일본 명문가와 박물관 깊숙이 보관되어 있다한다. 일본은 1953년에 

조선막사발을 국보 지정하였다. 이웃나라에서 우리 막사발의 가치를  알아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차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일본 다도에 쓰이는 차는 말차이다. 름을 들어보면 뭔가 차원이 다른 이상한 차일 

 같지만 그냥 녹차를 아서 가루로 만든 것이다. 말차는 중국 송나라시절 차를 마시던 풍습에 전해져왔으며 

말차의 생명은 풍부한 거품을 얼마나  일으키느냐에 달려있어 거품에 따라 맛이 좌우된다. 그런 자연의 녹색가루를 

심미적으 가장  섬길  있는 그릇은 오직 조선막사발 밖에 없다.

 

일본인들은 사물의 미를 완벽한 대칭에서 찾는다. 그런 일본사람들에 막사발은 엉뚱하고 엉성한 미학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충 만든 같기도 하고, 만들다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투박하고 거칠기까지 막사발은 일본인들이 

여태껏  번도 보지 못한 그런 소박한 미로 들을 경악하게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전라도 지역에 차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전쟁이 많아 차가 문화로 자리 잡기에 힘들었다. 고려시대에  문화가 잠시 번성하는 듯도 했지 조선 건국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차보다는 주류문화에 선비문화가 맞추어진다. 어쩌면  차려진 주안상에  문화가 밀려났는지도 

모르겠. 그런 사이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문화수탈이 곳곳에서 행해지면서 조선 도공들을 씨를 말리듯 끌고 

간다.  전쟁의 장본인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사랑은 어느 누구보다 각별했다. 정치를  때도 그의 에는 항상 

센노리큐라는 유명한  선생을 모셨고 전란 중에도 차실을 마련하며 차를 공경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조선막사발 

사랑은 과히  수준이었다. 그때 조선에서 들어온 고려도자기나 막사발은 사무라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존귀한 

물건이 되었으며 공로를 세운 사무라이들에 조선도자기는 가보로 남길 만큼의 국보급 하사품이 되었다.

 

우리가 조선은 정복하지 못했지만 가장 원했던 찻사발 전쟁에서는 겼노라.” 그들이 한말이다. 그래서 임진왜란을 

다른 말로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그때 끌려간 도공들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명한 도공 이삼평은 

후쿠오카에서 20 만에 고령토를 찾아내 이도다완 만들어내고 일본은 이도다완에 일본 색을 드리우는 기술로 

도자기와 다도를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드는 일에 성공한다. 그때 도요도미 히데요시나 사무라이들이 이웃나라를 

정복해  막사발에 마시는 말차 한잔이 과연 어떤 맛이었을까?   잔은 행복의 극치였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삶은 깨진 도자기처럼 비극적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사랑하면 서양이나 유럽 사람들을 빼놓을  없다. 그들은 동양에 대해 다소 냉소적이고 편파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지만 동양문화 중에서   의구심 없이 인정하는 것이 바로  문화이다. 참으로 이상한  렇게 멀리 떨어진 

동양과 서양이 찻잔 속에서는 만나왔다는 사실이다. 서양인들은 아침의 모닝커피를 즐기는데 유럽에서는 특히 

오후의 홍차 즐긴다. 그들은 우리의 종교와 윤리를 비웃으면서도 홍차는 머뭇거리 않고 받아들였다. 이미 차는 

언어를 넘어 세계 속의 가장 빠른 소통의 물질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일으킨 전쟁도 차와 많은 연관성 

있다. 아편전쟁이나 커피생산지인 식민지에서 열강들이 일으킨 전쟁 차를 마시기 위한 전쟁으로 말할  있을 정도다.

 

우리는 사람과 소통할  차나 한잔 합시다라고 말을 건넨다. 차에는 은근함이 들어 있다.   모금으로 입술을 

적시고 목으로 넘긴  찻잔 살며시 내려놓을 ,  찻잔 내려놓는 소리는 마치 상대방에게 마음 문을 두드리는 

신호음 같다. 그래서   잔에는 상대방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섞여있는 듯하다.   잔을 같이  때는 말해야  

것만 해야   같다.  이상을 말하고 싶을    모금을  마시며 머뭇거린다. 하지만 정작 말하고 싶은 

순간에 찻잔은  비어있다. 그러면 추어야 한다. 어쩌면   잔이 얄미운 절제감에 대해 알려주는지도 른다. 

차에는 포도주의 거만함이 없고 커피가 주는 강한 중독성도 없다. 하지만  맛에는 도무지 견딜  없는 미묘한 매력이 

있고 그런    앞에 두면 내면이 고요해진다. 지금  앞에 놓인   잔에    마음이 담긴다. 

순간 마음이 가지런해지면서 아름답게 인생을 살고 싶은 작은 소망도 샘솟는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다. 그리운 사람, 

지나간 추억이, 남기고간 시간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아름다운 가을이   잔에 담긴다. 아름다움은 눈이 아니라 오감으로 맛보아야한다 그래야 진정한 

아름다움이 마음깊이 어찬다. 차에는 오감이 있다.

 

귀로는 찻물 끓이는 소리

코로는 차의 은은한 향기

눈으로는 찻잔에 비치는 차의 빛깔

입으로는 차의 

손으로는 차의 따뜻한 감촉

 

 

석양 너머로 가을이 고요히 떨어진다. 이럴    잔이 제격이다.  잔을 너무 형식과 격식, 도를 운운하며 마실 

필요는 없다. 오늘 하루 주어진 햇살  , 바람  점처럼, 그저 오늘 기분에 맞는 따뜻한  잔이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오늘이  것이다. 그저 차가 있기에 차를 시고, 무심하게 생각조차 느끼지 않으며 엷은 미소 속에 마시는 

   진정한 차의 내면이  것이다. 우리  속에 일상으로 마시는  . 

 평범함에 소소한 행복이 깃들어진다면 만추의 가을밤은  어떤 날보다 찬란한 밤이  것이다.

이제 계절은 우리를   곳으로 이끈다. 위대한 자연이 스스로 겉치 옷을 벗는다. 숲의 바닥은 무성했던 초록을 

갈잎으로 바스락거리게 한다. 온기 하나 없을  같은 앙상한 나뭇가지가 쓸쓸함을 자처한다.  자연을 일상화된 

  잔으로 포근히 매만져 주면 어떨까?

 

 

우리, 차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