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릉야책_4호

어서와 블라디보스토크는 처음이지?

김해경

 

 

 

# 첫째  : 굿모닝 블라디보스토크

 

2018 4 27 남북정상회담 만찬  서태지와 아이들 <발해를꿈꾸며> 음악으로 남북한의 평화에 대한 소망을 

담았다.  역사적인 간에 나는  옛날 발해의 영토, 연해주 지역인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를 3 4 

일정으로 역사 탐방을 다녀왔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블라디(vladi:정복하다) 보스톡(vostok:동쪽)’ 합쳐진 말로 

동방을 지배하라라는 뜻으로 동해 연안 최대 항구도  군항이다. 소련 극동함대의 사령부가 있는 해군기지이자, 

북극해 태평양을 잇는 북빙양 항로의 종점이며, 모스크바에서 출발하는 베리아 철도의 종점이기도 하다. 

 

또한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지방 최대 어업기지이며, 포경선· 가공선·냉동선의 근거지이다. 겨울철에는  안이 

다소 결빙하지만, 쇄빙선을 사용함으로써 1 내내 활동이 중단되지 않는다.

탐방 첫날(4 25) 오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제일 먼저 곳은 독수리 전망대였다. 독수리는     

없어서 독수리 전망대라 이름이 무색했지만 블라디보스토크를  눈에   있을 정도로 트인 곳이었다. 바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은 차가왔지만 살은 머지않은 봄소식을 전해 주는 것만 같았다.

 

해양공원 옆에 있는 군사박물관(요새 박물관) 둘러보았는데 노후가 심한 각종 무기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실내에도 총기류와 상도 전시되어 있었으나 영어로 안내된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러시아 글자로만 표기되어 

있어서 자세한    없었다. 우리나라 박물관은 한글과 영어로 설명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블라디보스토크는 

외국인에게 불친절한 것인지 미국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아무튼 영어랑 그다 친하지 않았다.

 

해양공원은 블라디보스토크 시민들에게 좋은 휴식처였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산책하는 가족들, 청춘 남녀, 

어린이들. 오후 6 훨씬 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저녁이 있는  자체가 너무나 

부러웠다. 해양공원을  걷다 보면 아르바트 거리가 나온다. 모스크바에 있는 르바트 거리를 본떠 만들었는데 

군데군데 휴식을 취할  있는 벤치와 분수대가 있다. 자동차는 다닐  없고 젊은이들이  가운데로 걸어 니는 

보행자 중심의 거리이다. 주로 카페와 호프집, 편의점 등을 이용할  있고 예술의 거리 느낌이 난다,  양쪽에는 

유럽풍의 건물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서 마치 유럽에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 둘째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아침 일찍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우수리스크까지  30  시베리아 횡단열차 체험을 했다. 

출근시간이 지나서  기차 안에 러시아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기차역에는 여자 역무원들 제법 눈에 띄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무려 25년간(1891~1916)  10 루블 들여 건설했다.  철도의 길이는 지구 둘레의 

3분의 1 해당하는 9,288km(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로서 세계에서 가장  철도다.  80~90km 열차로  

거리를 주파하는 데만 꼬박 6 7(156) 걸리며, 달리는 동안 경도차에 따르는 지방시(地方時) 일곱 이나 

바뀐다.  철도는 90 개의 크고 작은 도시를 지나가며 16 강을 건너간다.

 

우수리스크에는 이상설 선생 유허비와 최재형 생가, 고려인 문화센터가 있다. 이상설은 1907 고종의 밀지(密旨)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李儁), 이위종(李瑋鍾) 함께 참석했다. 일본의 략행위를 규탄하여  세계에 

알리려 하였으나 일본의 계략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준은 자결을 단행, 세계를 놀라게 하였는데, 본국에서는 

본의 압력으로 궐석재판(闕席裁判) 진행되고 이상설은 사형이, 준과 이위종에게는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그래서 귀국을 단념하고  ·미국을 거쳐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유인석(柳麟錫) 등과 성명회(聲鳴會) 조직, 

국권침탈의 부당성을 통박하는 성명서를 성하여 각국에 발송하는  세계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본의 

요청을 받은 러시아 관헌에게 붙잡혀 투옥되었다. 이상설 선생은 1917 3 2 48세를 일기로 순국했다. 화장하여 

수이푼 강에 뿌려달라는 이상설 선생의 유언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최재형 생가는 외관만 있을  내부는 복원 공사로 인해  비어 었다. 최재형 선생이 거주했을 당시의 모습을 

  없어서 몹시 아쉬웠다. 최재형 선생은 1877 17세가 되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로 돈을 모았으며 

1908 4 얀치혜에서 이범윤, 이위종, 엄인섭, 안중근 등과 함께 동의회를 조직했다. 항일의병 활동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거금을 내놓았다. 1919 4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재무총장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11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新韓村) 본부를  독립단을 조직하고 무장투쟁을 준비하였다.

1920 4 일본은 니항사건을 빌미로 연해주 일대에 출병하여 베리아 혁명군과 한인의병을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최재형은 우수리스크에서 체포되었으며 이송 도중 탈주를 시도하였다가 총격을 받고 국하였다.

 

2009년에 개관한 고려인 문화센터에서는 고려인 강제 이주 역사를  있는 사진  영상 자료와 아리랑 노래와 

관련된 자료, 고려인과 관련 소설  각종 책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스리스크에서 고려인은 명도 만나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최재형 생가 복원을 위한 기부금 함이 있어서 거기에다 기쁘게 투척했다.   전에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에 방문했을 때에도 기부를 했는데 마치 무슨 대단한 애국이나 하는 것처럼 벅차올랐다. 식민지 시대의 

아픈 역사로 인해 고려인이 발생했고 아직도 러시아 땅에서 차별과 역경을 겪고 있다. 이상설 선생, 최재형 선생의 

적지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하다. 유유히 흐르는  옆에 이상설  비석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최재형 선생 생가는 외관만 앙상하 남아 있어서 고작 이거 하나 보려고   길을 왔는지 허탈감을 느꼈. 

마치 생가는 최재형 선생 체포 당시에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처량하 안타까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동안 <암살><밀정>등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상하이를 비롯한 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에 관한 내용들은 

많이 접해왔지만 연해주와 련된 독립운동에 관한 것은 거의 접해   없었다. 그래서 아직은 낯설 어색하다. 

그리고 우리에게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연해주를 배경으로  독립운동 역사를 만나볼  있기를 

기대해 본다.

 

 

#셋째  : 루스키 섬과 박물관

 

 폭의 그림과도 같은 루스키 섬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km 떨어 곳에 위치한 섬으로 동해 연안에 위치한 섬이다. 

섬의 이름은 동시베리아를 통치한 니콜라이 아무르스키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더불어  섬은 소련 시절, 군사기지로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크론슈타트에 비교되어 극동의 크론슈타트라고도 불리고 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도 쌀쌀해서 바다 가까이까지 걸어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바다를 가까이에서 보자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트인 바다를 시야에 담았다. 해변에는 신기하게도 횟집이나 션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국의 바다처럼 소금기 가득한 짭조름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갈매기도 많지 않았다.

루스키 섬에 위치한 극동연방대학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최대 규모의 유일한 대학교이며, 캠퍼스다. 블라디보스톡 4 대학이 합병하여 만들어진 학교다. 극동연방대학 캠퍼스 안에 해변가가 위치해 있으며,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휴양지로도 이용된다.

 

극동연방대학 캠퍼스 투어를 했다. 대학교 건물, 러시아 자원, 북한 학생, 유학생활 등에 대해서 한국 유학생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캠퍼스가 바다와 접해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해변가를 산책하고 수영도 하고 기숙사에서 

바다를   있다고 했다. 루스키 섬을 둘러보고  점묘법의 화가 조르주 쇠라의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그림 인물처럼 산책도 하고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아르세니예프 박물관은 1890년에 설립돼 40만점 유물이 소장돼 있다고 한다. 자연사, 고고학, 

민속학, 종교, 역사학, 현대 자료까지 한눈에   있다. 박물관 유물에 관한 어떤 설명도 들을  없었기에 유물을 

보기만 해야 했다. 2 전시실에서 우연히 발해  표기를 보고 너무 반가웠다. 

블라디보스토크가 과거 발해 땅이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느끼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박물관에서 발해를 아주 

잠깐 만날 수밖에 없는 점은 너무 아쉽고 안타까웠다. 

 

 

# 마지막  : 조별 미션을 마치며

 

4 28 마지막  혁명광장과  주변에서 조별 미션을 수행했다. 혁명광장에서 동상을 배경으로 조별로 점프  

찍기, 혁명광장 동상과 동일한 포즈로 단체사진 촬영하기, 마트로시카 인형 들고 인형과 같은 표정 짓기, 러시아인과 

함께 사진 찍기, 러시아 잡지 구입  노점상  구매하기, 커피숍에서 커피 구입 등의 미션 수행은 흡사 런닝 

이를 하는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팀워크를 힘껏 발휘하려 노력하고. 

 

 에너지와 승부욕에 대한 열정이 마구 분출했다. 비록 우리 조가 우승도 못했고 맛없는 러시아 카페 라떼 때문에 

뒷맛  개운치 않았지만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상적이었던 것은 노점에서 잡지를 

 때였는데, 상인이 잔돈이 없어  못한다고 해서 난감했었다. 가게 문을 열기 전에 잔돈을 미리 준비해오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같으면  가게에 가서 잔돈을 구해서라도 물건을 판매하려고 했을 텐데 

러시아 상인은 사든 말든지  신경을 쓰지 않는 태도가 놀라웠다. 미처 사지 못한 물건 사려고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안에 있는 상점에 갔다. 우리나라 김포공항보다도 작은 규모였고 물건도 별로 없어서 놀라웠다.

아무리 좋은 곳도 함께 하는 사람과 마음이 맞지 않으면 좋은 곳에  감흥이 별로 없다. 그러나 최상의 곳이 

아니더라도 옆에 있는 사람 좋으면 같이 먹는 음식도 맛있고 장소도 좋은 추억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역사 탐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