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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야책_3호

그냥 떠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

 

글 이혜성

 

 큰 고민 없이 출발해서 도착한 블라디보스토크.


 도착해서 바로 올려다본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비도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고. 예상했던 날씨지만 조금 아쉬웠다. 예약해둔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길, 도심으로 가는 길 사이사이, 숲 사이사이 나무로 만든 예쁜 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 자리를 위해 주변을 넓히는 것이 아닌 자연의 빈자리에 사람들이 자리를 빌려 쓰는 듯해 보였다. 그 풍경이 마음에 들면서 잘 왔다는 뿌듯함이 들었고 그렇게 구름이 걷히고 해가 떴다.


 짐을 내려놓고 숙소 근처 마트에 들러서 저녁에 먹을 간단한 안줏거리와 술을 샀다.

 

‘보드카의 나라에서는 제일 먼저 보드카를 손에 쥐어야지!’

 

10시 이후에는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 어색한 이 나라. 간단히 장을 본 나와 친구는 숙소를 정리하고 ‘아르바트’ 거리로 향했다.


8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 해가 한창이다. 우리는 그 동네에서 가장 유명하고 유쾌한 식당으로 들어가서 즐겁게 식사하고 종업원들과 인스타그램 친구도 맺었다. 맛있는 식사와 직원들의 센스 넘치는 액션 그리고 넘치는 에너지와 함께 여행의 첫날을 실감했다. 맛있는 음식, 와인, 추억 골고루 잘 삼켰다.

 

 식사 후 ‘아르바트’ 거리 앞 해안공원에 앉아 있다가 옆에 앉은 한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호기심 가득한 눈. 웃으니 다가왔다. 어색한 영어로 말을 건넨다. 한국 사람이냐며, 꿈만 같다며 나와 친구와의 만남을 꿈만 같다며 좋아했다. 곧바로 자기의 관심사를 알려주는 소녀. 알고 보니 K-POP을 아주 좋아하고 BTS(방탄소년단) 팬이었다. 좋아하는 한국 가수 중에 내가 처음 들어보는 가수도 있었는데 너무 생소해서 지금도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가수와 결혼하는 게 소녀의 꿈이라고 했다. 생김새는 성숙해 보였는데 신발을 보니 어린이 신발처럼 보였다. 나이를 서로 맞추는 놀이를 했는데 그 소녀는 13살이었다. 15분 정도 번역기도 돌리며 대화를 나누었고 소녀는 보호자와 함께 떠나며 작별 인사를 했다.


 거리에는 젊은 남녀들이 한국의 대중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 거리가 마냥 낯설지만은 않았다. 익숙한 음악들. 외국이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 가까운 곳에서 자주 들려왔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제주도 여행보다 편하게 이곳을 즐기고 있는 나를 보았다. 유난스러움이 없어서 더 즐겁게 시작한 여행이었다. 도심에서도 둘러보면 언제나 자연이 함께 하고 있고, 초고층 빌딩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곳에서도 쉽게 넓은 하늘에 풍덩 빠져 쉴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해양공원


 밤하늘도 마음에 들었다. 넓은 밤하늘을 가리는 키 큰 건물이 없어서 까만 바탕이 가득한 하늘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조금 궁금한 게 생겼다면 여행 내내 찾아다녔던 달은 잘 보이지 않았다. 별들은 많았는데.... 달은 왜 안 보였을까? 내가 찾지 못했을지도....


 자연스럽게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진 동네방네. 넓은 하늘과 초록이 많은 이 도시가 나는 너무 사랑스러웠다. 돈이 많았다면 부동산 중개소로 당장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츤데레 같이 잘 챙겨주는 러시아 사람들. 반은 누워서 귀찮다는 듯 물건을 집어 계산하는 매장 카운터 직원과 나의 피곤한 다크 서클로 눈인사하면 웃음이 번지는 이 동네. 표정은 무뚝뚝하지만 귀찮은 듯 친절한 재미있는 이 동네 사람들이 금세 마음에 정이 들었다.


 또다시 가고 싶은 블라디보스토크.
두 번째 방문일 땐 조금은 더 반갑게 그곳을 반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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