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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야책_3호

말 안 듣는 사람이 있어서 세상이 발전하는게 아니겠는가?

이진이, 손현숙 학부모님

[동구여중 정상화를 위한 학부모회]를 만나다

 

글 황현숙

 

여름이 올 거라고 암시라도 하듯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던 6월의 어느 날, 

동구여자중학교 학부모님 두 분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초대해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진이(이하 이) : 안녕하세요, 동구 여중 학부모 회장 이진이입니다.

 

손현숙(이하 손) :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인, 2018년에 동구여중 학부모 회장을 맡았었구요. 이름은 손현숙입니다.

 

작년 한 해 동구학원은 매우 ‘핫’ 했는데요.

우리가 흔히 동구사태라고 부르는 일을 짧게 정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이 일은 2012년 한 교사의 공익제보로 시작됐어요. 제보를 받은 교육청은 특별감사를 실시했고 이사진 전원이 물러나게 됐죠. 이후 교육청이 파견한 관선이사에 의해 정상화 과정을 거치면서 2017년 5월, 교장 공모제를 통해 평교사였던 오 선생님께서 동구여중 교장으로 임용되셨어요. 그런데, 물러났던 이사진이 교육청의 이 같은 행정이 과하다며 행정소송을 청구해 승소하면서 2017년 11월 다시 복귀했고, 돌아온 이사진은 오 선생님의 교장 임용을 취소했어요. 교장임용취소 후 동구여중은 교장 없는 학사운영으로 파행을 겪었죠. 교장 공백으로 인한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왔고 우리는(동구여자중학교의 학부모와 학생, 교사 등) 사립학교법에 규정된 자율성이 학교 법인의 교원에 대한 징계권 남용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등 교장선생님을 학교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일들을 해 왔어요.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 또 그런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손: 우리학교 교장선생님이 안 계시다는 것에 우리 학부모회가 동구재단과 교육청에 간담회를 요청했었어요. 학생들에겐 교장선생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육청에 가서 교육감도 만나고 동구재단의 사무국장도 만나며 교장선생님이 우리 학생들에게 있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 했죠. 학생들은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해 서울시 교육청과 서울시의회를 찾아 학교 정상화를 요청했어요.


동구정상화에 아이들도 참여했나요? 참여를 독려하신 편인가요?

 

이: 저희 아이는 동구정상화 활동에 참여 하지 않았어요. 큰 애가 2학년, 작은 애가 1학년인데 오 선생님과 그리 친분이 있는 편은 아니라서요. 참여한 학생들은 대부분 3학년 이었어요. 교장 선생님은 3학년 학생들이 1학년일 때 체육 선생님이셨어요. 아무래도 교장선생님으로 만났던 친구들 보다는 친분이 더 있기도 했고, 이 상황에 대해 아는 것도 3학년들이 훨씬 많았으니까요.

 

손: 엄마의 행동을 봐 주기 바랐어요. ‘이게 바른 거니까 너도 해’가 아니라 바르다고 판단이 되면 너도 같이 동참해 줘 정도.... 엄마들도 본인들의 판단에 의해 동구 정상화에 참여한 것처럼 아이들도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적극적으로 참여한 친구도 있고, 아예 관심없는 친구도 있었고요. 저희 아이는 3학년이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한 편은 아니었어요. 헌법 소헌 할 때 글을 읽기로 한 친구가 사정이 안 되서 대신 읽게 되었는데, 그 때 한발 뒤에서 지원만 하던 입장에 있다가 앞에서 행동한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고, 열심히 돕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이: 1학년 친구들은 교장선생님을 본 적이 없어요. 좋은 경험이 없으니 참석하는데도 미온적이었죠. 그런데 자신의 담임이 이 일에 관계 되니까 바뀌더라구요. “우리 담임선생님에게 문제가 생기면 나도 참여할 거야.” 라면서 교장 선생님 뿐 아니라 담임선생님과 교과목 선생님이 징계의 대상이 되자 가만히 안 있겠다고 하더라구요.

 

재단의 비리에 대한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우리 선생님’ 이 당하는 피해에 더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거네요.

 

손: 그렇죠, 재단의 문제가 어떤 것인지, 무엇이 나쁜지, 나한테 뭐가 좋지 않은지 어떻게 알겠어요. 아이들에게 교장은 자기들과 가까운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애틋함이 없죠. 그러니 교장선생님을 향해서는 ‘정의가 이겨야한다’ 정도의 수준으로 생각하지만 담임과 교과목 선생님을 괴롭히는 것은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니까 ‘참을 수 없다,’ 뭐, 그런 거 같아요.

 

3학년 학생들이 교장선생님과의 친분으로 인해, 동구 정상화에 적극적이었다고 하셨는데요.

아이들이 알 수 있도록 자료가 공유 되었나요?

 

손: 학생들은 뭔가 일이 있다는 정도만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엄마들에게도 자료를 공유시키기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엄마들에게 먼저 자료가 공유되었고, 이후에 아이들에게 전하는 방식이 됐어요.

 

이: 우리 아이들은 제가 밥상에서 남편이랑 얘기하는 과정에서 내용을 알게 됐어요. 우리 얘기를 듣고 반 친구들의 정보 오류를 잡아주는 역할도 했죠. 일부 아이들이 “교장선생님이 뭘 잘못해서 쫓겨났대” 라고 말하기도 했거든요.

 

손: 재단이 뭔가 잘못했고, 부당하게 선생님을 해고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 건 결국 엄마들이 많이 퍼뜨리고 행동한 결과를 기사 등으로 접하고서예요.

 

학교보다는 가정에서 사태를 파악하고 학교로 실어 나르는 역할을 했다는 말씀이시죠?

 

손: 그렇죠, 아이들이 무슨 수로 알 수 있겠어요. 선생님이 말씀 안 하시면 방법이 없죠. 그런데 선생님도 선생님 나름이라. 이진이 어머니 자제분의 담임은 참여하지 않은 선생님이셨고, 그러다 보니 현장체험 할 때 그 반 학생들은 거의 참여를 안 했죠. 재단하고 맞선다는 의미인데,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아요.

 

손: 만약에 아이가 고등학생이었다면 아마 저도 참여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고등학교는 학교가 대학을 보내주는 거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거든요. 실제로 동구 마케팅 고등학교 학부모들은 같은 재단이지만 나서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부모님들이 나서지 않는 것을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죠. 마케팅 고는 대학진학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큰 취업의 문제가 걸려 있으니까요.

 

이 : 고등학교 부모님들은 ‘1’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손 : 도와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분들은 오히려 재단 일에 적극적이셨죠.

 

이 : 저는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한국에 들어왔어요. 어머니회도 같은 학교 학부모인 이웃의 권유로 얼떨결에 들어갔죠. 처음 사태에 대해 들었을 때는 그냥 뭔가 문제가 있어 해임을 당했나보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간담회에 참석했다가 ‘이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재단 측은 교육가가 아니라 사업가 아니 무슨 임대업자 같아서 충격을 받았어요.

 

이 : 그 날 재단 사무국장은 “교육자로서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재단입장에선 중학교가 필요 없다. 우리가 학교에 건물 빌려 주고 있는데, 국가에서 임대료 받아야 할 입장이다. 그런데 왜 우리한테 이러느냐.”고 했죠.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되면 안 되지 않느냐” 라는 교육자로서의 사명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려고 했는데 “골치 아프다, 교육청이 우리를 너무 괴롭힌다.” 라고 하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더라구요.

 

이 : 아이들을 도구로만 생각하는구나, 그런 인상이 너무 강해서 그 날 바로 학정모를 만들었죠.

그 자리에 있던 학부모님들이.

 

손: 너무 분개를 해서 소리 지르는 어머니도 있었고, 사무국장은 왜 어머님들이 우리한테 그러냐고 또 맞서 소리 지르고 그날 분위기가 정말 웃겼어요.

 

아이들이 받은 불이익은 무엇일까요?

 

손 : 초등학교는 교육청에서 다 지원해주니 뭘 안 해준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중학교에 오니까 부족한 부분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재단에 문제가 없었다면 그 돈이 학교에 쓰여 졌을 테고 그럼 적어도 화장실은 안으로 들어왔을 것 같아요.

 

이 : 동구여중은 화장실이 건물 밖에 있어요. 그런 학교는 서울시내에 두 곳뿐이죠.

 

손: 그런데 사실 동구뿐만 아니라 사립 중학교들은 중학교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비리가 없었다고 해도 중학교에 투자하는 걸 아까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같은 재단인 고등학교는 달라요. 취업률이 학생유치의 기준이 되기 때문인지 투자를 많이 하더라구요.

 

이 : 고등학교 학부모가 ‘1’도 안 움직인 게 이해가 되요. 안 해준 게 없으니까요.

 

손 : 이 사태를 계기로 살펴보니 중학교는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지원이나 시설 보수가 없었던 거예요. 교육청 지원을 받으려면 재단에서도 상당 부분을 투자해야 해요. 그런데 어차피 투자한 후에는 투자한 것이 모두 재단 재산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하지 않았죠. 그런 부분을 알게 되어 재단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무엇보다 교장선생님이 없다는 자체가 학생들에게는 큰 불이익이죠. 학교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우니까.

 

이 : 엄마 아빠가 싸우면 아이들이 눈치를 보잖아요, 재단과 선생님이 싸우면 선생님도 좋은 기분일 수 없으니 그런 면에서도 아이들은 손해예요. 그러니 이러든 저러든 빨리 해결되길 바랄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교장 선생님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노력하셨는데 왜 꼭 오 교장 선생님이어야 했나요? 

다른 누구라도 교장 자리에 있으면 되지 않나요?


이 :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손 : 그런데, 당시 교장선생님이 재단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해임되었기 때문에 다른 교장이 온다면 재단 쪽의 인사가 올 가능성이 크죠. 재단의 입장을 대변할 테니 그 때처럼 제대로 된 지원이나 교육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을 거고요. 똑같은 도돌이표만 반복 되는 거죠.

 

이 : 어떤 학부모한테 “자기네들 오빠야? 왜 이렇게 난리야,” 라는 소리도 들었어요. 혈육도 아닌데 뭘 그렇게 저녁도 못 차리고 앉아서 열심히들 그러느냐고. 교장 자리를 놓고 적임자를 생각해보니 오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과 학교를 위해 가장 최적화된 선생님이셨어요. 학교를 위해서 참 많은 일들을 하셨더라구요. 게다가, 하다 보니 의리도 생기고, 어처구니없는 재단의 대응에 전투력 또한 상승했죠.

 

손 : 선생님들도 오 선생님을 원하셨어요. 그 분이 교장으로 계실 때 해 오신 일들은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고, 학부모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죠. 재단에서 내세운 후보는 이력만으로도 재단편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학부모가 만족할만한 인물을 찾겠다고 해놓고 그런 사람을 추천하니 재단을 믿을 수가 없었죠. 학부모 사이에서도 설왕설래 말이 많았는데, 결국은 원상복귀가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는 결론이 났어요.

 

이 : 마지막에 재단 쪽에서 오 교장선생님께 제의하고 대화를 시도 할 때, 교장선생님이 많이 망설이셨어요. 본인만 복직하는 재단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 당신이 30년간 지켜온 교육관과 맞지 않았을테니 자존심도 상하셨겠죠. 그때 제가 좀 강하게 밀어 붙였어요, 애들 생각하셔야 한다고. 그리고 1년을 이렇게 해왔고 더 이상은 힘드니, 어서 합의점을 찾으시라고 말씀드렸죠.

 

손 : 오 선생님께서 돌아오신 게 재단에서도 일보 후퇴 한 거고 교장 선생님도 약간의 자기 사명감을 내려놓으신 거죠.


이 : 세 분이 같이 하셨는데 혼자만 돌아오기 미안하셨을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강하게 이야기 한 것이 죄송스럽기도 해요. 그런데 선생님들도 쓰러지기 일보 직전 이었으니까....


손 : 그렇죠. 피로가 일 년 내내 누적되었죠.

 

동구는 지역공동체와 협의가 잘 되는 학교로 유명한데요.

그게 역으로 재단이 지원을 안했기 때문에

지역공동체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손 : 맞아요. 혁신교육을 한 이유도 재단에서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고자 실시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예산이 나와 교육에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마을공동체와의 협력 사업을 통한 지원 역시 아이들을 위한 혜택을 생각해서 하는 거죠.

 

선생님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움직이셨는데 재단은 머물러 있었네요. 

선생님이 돌아오셔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일까요?

 

손 : 학교, 특히 교무실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이 : 선생님들은 “우리 다시 헤어지지 말아요” 라고 써서 붙이셨어요.


손 : 선생님이 기분이 좋아야 아이들을 대할 때 기분 좋게 대하게 되잖아요. 선생님들의 분위기가 달라진 게 아이들에게 큰 혜택이죠. 그리고 학부모회도 정상화 되어서 교장선생님 사업구상에 맞춰 활동을 하고 있어요. 교장선생님은 본관 뒤쪽 가건물을 허물고 4층 건물을 짓고 싶다고 하세요. 그래서 본관하고 연결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도서관도 가까이에 둘 수 있고 포크댄스 정도 출 수 있는 체육관도 생기는 거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내부로 들어올 수 있어요.

 

이 : 작년에 구청의 협조를 받아 완공된 통학로도 교장선생님의 공이예요. 선생님은 구청에서 하는 교육행사 등에 솔선해서 참여하시는데, 그런 부분이 지원 받을 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긴 시간 함께 이야기 나누어 주신 두 분께 감사의 인사로 마무리를 했다. 어떤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한 가장 핵심은 다음번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선례가 매우 중요한 데 동구여중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들이 역할을 잘 해주셨다. 우리 사회가 참 말 잘 듣는 사람만 원하는 거 같다. 그런데 말 안 듣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들이 계속 말 안 듣는 사람으로 남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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