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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야책_3호

주민과 함께 가는 복지

정릉사회복지관의 전경

주민과 함께 가는 복지

- 정릉종합사회복지관(관장 : 이진이) 탐방기

글 김정훈

 

 올초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마을활동가 삐융의 전화를 받는다. '더하기축제' 준비를 같이 하잔다. 동네책방 호박이넝쿨책을 차려놓고 나름 동네사람들과 섞여보려 애쓰던 터라, 이 참에 동네행사도 같이 만들어보면 좋겠다, 싶어 회의에 참여한다.

 

 더하기축제. 올해는 6월 1일에 열렸다. 즉, 실제 행사는 하루. 그런데, 2월초부터 그 준비를 시작했다. 그 하루의 행사를 준비한다고 모인 이들이 어림잡아 50명이 넘는다. 나 같은 일반 주민부터 동네활동가들까지. 그 하루의 행사를 위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토록 오랜 기간 얘기를 나눈다고? 더군다나 오로지 효율만을 강조하는 이 현대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다. 아니 이미 여러해를 거쳐 벌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건 그렇다 치고, 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데... 이상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 축제의 최초 발의자이자 실 집행자인 정릉종합사회복지관의 직원들을 만나게 되며 또 그 곳에 축제용품을 만들러 오가며 위 의문에 또 다른 의문이 더해진다. 

 

 솔직히 학교 졸업 후 25년 만에 이런 사람들과 이런 문화를 처음 만났다. 그 사람들과 그 문화가 어떠냐고? 딱 80년대 대학 학생회 같기도 하고, 그 시절 농활가는 학생들 같고, 그 시절 시골교회 청년 선생님들 같고, 70년대의 건실한 농촌 지도자 청년들 같더란 말이다. 공동체를 잘 만들어 보겠다는 의식으로 눈빛 초롱초롱 발하던 그 때의 젊은이들 같았다 그 말이더라. 

 

 도대체 이 사람들과 이 곳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과 이 곳이 무엇인지 알면 '더하기축제'같은, 현대사회의 유행의식으론 도저히 가능치 않은 일이 만들어지는 이유도 알게 되겠지.

 

 시간을 약속하고 조금 고생스레 복지관을 찾아간다. 가는 길이 고생스러운 이유는 그 위치가 외진 언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탐방을 맞아주는 홍봉기 과장 왈, 처음 복지관을 세울 당시 이 곳 국회의원 및 관리들이 큰 고민 없이 위치를 공약하고 그대로 실행했기 때문이란다. 음... 그저 땅값이 산 곳만을 찾았나 보구나! 우리나라의 당시 공무원들이 갖고 있던 복지에 대한 감수성이 어땠을지 새삼 느껴진다.

 

 자리를 잡고 홍과장의 브리핑이 시작된다.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라는 복지의 기보 ㄴ개념에서부터 설명이 시작된다.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보편적 복지는 복지의 대상을 가리지 않는 것이고 선택적 복지란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 차상위 계층, 장애니 등 사회적 약자들이 복지의 대상이 된다. 복지관이 지어질 당시 외진 곳에 생긴 이유가 대략 짐작이 간다. 실제로 우리나라 복지활동이 처음엔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즉, 빈민 구제가 가장 큰 목적이었단다. 그렇게 시작되었으니, 정릉에 처음 복지관이 들어설 때도 사회적 약자들에게만 복지를 '베푸는' 시혜적 관점에서 건물이 지어진 것이로구나.

 

 하지만 현재 정릉복지관의 사업들은 복지관이 처음 들어설 때의 관점 및 주민들과 동떨어진 그 위치와는 아주 다르다. 정릉복지관이 추구하는 복지, 그리고 홍과장을 비롯한 정릉복지관 직원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복지는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그 사례들을 영상으로 보여며 그 소개가 세세하게 이어진다. 

 

 정릉복지관 주변엔 학교들이 많다. 청덕초등학교, 고대부중, 고대부고, 국민대학교, 현재 정릉복지관의 주요 목표들 중 하나는 이 학교들과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고, 그런 목표 하에 실제로 다양한 네트워크 활동들이 만들어졌다. '반짝반짝 빛나는', '다슬기 가족', '도란도란 인생 그리기', '어르신 가을 나들이', '청춘극장' 등등.

 

 '반짝반짝 빛나는' 프로그램에선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청소년, 경찰서, 성북구청, 한국전력이 관계를 맺어 보행안전을 논의하고 그 실천을 함께한다. 예를 들어, 아동들 눈높이에 맞는 교통표지판을 설치한다. 국민대 체육과 학생들과 동네 어르신들과의 네트워크 활동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직접 건강을 챙기실 수 있도록 학교의 교수님들이 직접 강의도 해주시고 관련 운동시설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 프로그램이 어르신들께 그렇게도 인기가 좋단다. 대학 교정에 들어가서 그 시설을 이용하며 강의를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에너지를 얻으시는 게 분명한 것 같다. 

보행자 안전을 위한 쉼표구간 표지

 

 복지관은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주민을 만나는 게 아니라 직접 만나러도 다닌다. 일명 '한 평 복지관'. 2년 전이었다. 복지관 직원 두 분이 호박이 넝쿨책을 방문했었다. 호박이 넝쿨책 공간을 마을주민들과 함께 공유 가능한지 얘기들을 나누다 가셨다. 아! 그 방문 또한 '한 평 복지관'을 위한 작업이었구나, 새삼 깨닫는다. 

 

 '한 평 복지관'이란 이런 것이다. 마을주민들이 자주 들르는 일종의 단골가게에 복지관 직원이 상주를 하며 마을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여러 마을의 문제를 주민들과 함께 해결해가는 장인 것이다. 아니 이런 아이디어들은 도대체 누가 내는 거야? 복지관 활동들 모두가 신기한 것들뿐이라 브리핑을 듣는 내내 도대체 어떻게 이런 발상들이 가능한지 스스로 질문을 하는데 홍과장의 브리핑 속에 그 답이 등장한다.

 

 "이렇게 복지관이 직접 개입하는 건 

낮은 단계의 복지 활동이죠

궁극적으로는 주민들만으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복지관은

그 네트워크의 조력자가 되는거죠"

 

 주민들이 자발적을 나서서 자신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 복지관의 궁극적 지향점이라고 그는 얘기한다.

 

 복지란 무엇일까? 어린 시절, 테니스 스타 비에른 보리(Björn Rune Borg)때문에 스웨덴을 알게 되고 그 나라에 있다는 복지라는 제도에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 어릴 적 스웨덴과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그 갭이 어머어마했었다. 그 때문인지 아직도 내 감성에는 복지라는 것은 일단 나라의 부가 크고 정부가 사회주의 성격이 있어야 하며 그 사회의 부유층이 교양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느끼고 있었으나... 정릉복지관이 추구하는 복지가 무엇인지 접하게 되는 순간 내가 생각하는 복지는 정말 낮은 단계의 복지 개념임을 깨닫게 된다. 즉, 그저 돈으로만 해결하는 복지.

 

 물론 나라의 부가 가능한 한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쓰여지는 건 아주 근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도 시혜적 관점으로 만들어지는 것 보단(시혜적으론 애초에 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를 위한 제도가 만들어지고 시행될 수 있도록 주민들이 직접 정부와 사회를 강제하는 것이 보다 높은 차원의 복지 아닐까? 홍과장의 브리핑을 들으며, 복지라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축약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을이 놀이터다! 정릉복지관이 추구하는 복지다.

 정릉종합사회복지관과 그 직원들에게 발산되던 독특한 문화와 정서를 이제 좀 알 것 같다. 더하기축제 준비를 위해 보지관을 방문했을 때 본 그 곳 직원들의 일상이 새삼 떠오른다. 방과후 아이들이 복지관에 놀러 와서 스스럼없이 간식을 요청하고 복지관 직원들이 그 아이들과 간식 하나 놓고 티격태격 부딪히며 잘도 논다. 

그랬구나. 이 복지관은 주민들에게 복지를 베푸는 곳이 아니었구나. 주민들 속에서 함께 놀며 주민들이 마을의 주인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로구나!

 

 언뜻 보기엔 비효율적으로만 보였던 더하기축제 준비과정도 새삼 이해가 간다. 복지관과 동네활동가들이 축제를 만들어서 주민들에게 '제공'하려던 것이 아니었구나. 준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그 모든 일들을 가능한 많은 주민들과 "함께" 하려던 것이었구나!

 

 주민들에게 그들이 나설 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는 정릉종합사회복지관과 그 직원들 감동적이다. 세상에나! 브리핑을 들으며 울컥거릴 수도 있구나! 세상에 보다 많은 "정릉복지관(내겐 이 이름이 이젠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다)"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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