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발>의 권우정 감독을 만나
글 김가희
권우정 감독을 알고 지낸 지 만 4년이 되었다. 성북을 기반으로 문화예술교육을 해보자고 처음 만나 협동조합을 함께 만들고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미디어, 영상 중심의 예술교육을 하고 있는 권우정 감독이 최근에 새 영화 <까치발>을 내놓았다.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시네마스케이프 상영에 이어 지난 6월 8일, 우리 동네 영화관 ‘아리랑시네센터’에 특별상영회를 했다.
2016 인천다큐멘터리 포트 ‘베스트 코리안 프로젝트상’ 수상
2016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캐치 다큐멘터리 포스트핀상
CGV 아트하우스 개봉지원작
2016 전주 국제영화제 코리아 피칭 우수상
2019 전주 국제 영화제 코리아 시테마 스케이프 프리미어 상영
영화를 만들며 여러 상과 지원을 따내는 것을 지켜봤던 나로서는 기대가 무척 컸다. 장애자녀 부모들을 인터뷰하고 그들과 팟캐스트와 연극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막연히 장애 관련 내용을 다루는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까치발> 트레일러를 통해 권우정 감독의 딸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권우정 감독 자신과 가족의 사적인 내용이 더 중심에 있었다. 나에게 이 영화는 그녀가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서 겪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과 극복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인터뷰에 앞서 영화 배급의 현황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영화배급사들이 이미 많이 망해서 몇 개 남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독립영화 배급사들은 사회적 사명감으로 일하는 부분이 크다. 그래서 배급사가 아니라 프로듀서 개인이 임의단체를 만들어 극장과 직접 연결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생겨났다고도 한다. 외국의 경우 TV 방영과 극장상영 둘 다를 목표로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극장에서 먼저 틀고 이후에 IPTV나 온라인 또는 공동체 상영 및 TV 방영 등을 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배급사 입장에서는 극장 수입보다 그 이후의 다양한 방식의 상영에서 오는 수입이 더 크기 때문에 배급을 통해서 이후의 수익을 보장받으려 하는 목적이 크다.
배급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인터뷰로 들어가려고 보니, 이미 잘 알고 있는 관계라 이상한 쑥스러움을 무마시키기 위해 자기 소개를 재밌게 부탁해보았다.
별명이나 애칭이 있으신가요?
중·고등학교 때 별명은 ‘우정의 무대’였어요. 나이가 나오죠? (웃음) 대학 때는 머리 염색, 노란 색 브리지를 하고 다녀서 친한 친구가 미친 고양이라고 불렀고, 그 이후 야옹이로 불리다가, 지금은 아이 학교에서 닉네임을 부르는데 ‘고냥’으로 정했어요. 나이에 따라 별명의 변모를 겪게 되네요. 마치 인생사를 보는 것 같기도 하네요.
“자신을 동물이나 식물에 비유한다면?”이라는
질문을 준비했었는데 이미 고양이라는 답이 나왔네요.
그런데, 아, 고양이 같은 성격이 되고 싶은데 실제로는 개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고양이가 되고 싶은 개라고나 할까요?
예전에 감독님 대학 시절 체육대회 때
‘럭구’(럭비와 피구를 합친 운 동)라는 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기했었거든요.
항상 에너 지가 넘치시는 것 같은데 운동을 좋아하시나요?
운동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요. 지금 ‘럭구’ 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특히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보면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과 계열을 다녀서 한 반 40명 중에 여학생이 열 명 정도였는데 그 때 여학생들은 중성이 되는 거죠. 럭구로 과별 대항을 하다보면 경기가 격해지면서 피도 나곤 했어요. 여성 팀 경기에 남학생들이 응원하면서 ‘감 놔라, 배 놔라’ 코치하며 관전하던 모습을 상상하면 좋게 말하면 재밌었고, 나쁘게 말하면 뭔가 소속감이나 중성적인 것이 강조되는 그런 분위기였었죠. 그 종목을 여성이 만들지도 않았을 거예요. 지금 돌아보면 그런 경기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었다는 반성을 하게 돼요.
<씨네 21>의 기사에서처럼 이번 영화를 여성주의 영화로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제 첫 작품인 <땅의 여자>는 여성주의자나 여성단체들이 아쉬워했던 부분이 있었는데요. 과거에 저는 역할을 중심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사회적 역할에 맞춰서 의무나 사명감 같은 것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 결국 나의 이야기로 돌아오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일부러 페미니즘 공부를 하지 않아도 일상과 생활 속에서 자연히 여성 문제들과 접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럭구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자연스레 <까치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네요.
<까치발>을 만들기로 계획한 시점은 언젠가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료조사를 시작했어요. 2015년부터는 제작 지원을 위한 피칭이나 촬영을 했고 장애자녀 엄마들과 팟캐스트를 만들면서 좀 더 집중했어요. 그 때까지만 해도 장애자녀 엄마들의 얘기와 우리 가족의 얘기의 비중이 비슷했는데 영화를 찍다 보니까 가족의 얘기가 더 많이 들어가게 됐어요. 아이와 찾은 병원에서 만난 한 장애자녀 엄마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 장애자녀 부모에 대해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땅의 여자>처럼 밀착해서 일상을 촬영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장애자녀 부모들이 만든 팟캐스트를 알게 되었을 때 그 분들을 촬영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부분이 어려워져서 성북에서 팟캐스트를 아예 만들게 되었죠.
자료조사 차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제작지원을 받기 위해 제작보고서를 쓰다보니까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분명해졌어요. 내 아이가 아팠던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감독이 영화 안에서 드러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딸의 이야기와 저의 일상까지 찍을 수밖에 없었죠.
<까치발>은 개인으로서의 권우정과 엄마로서의 권우정이라는 두 삶이 충돌하면서 느끼는 혼란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자기 성찰 과정이 잘 보였던 것 같아요.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 고비를 넘겼지만 뇌성마비일 수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 그럼에도 한 아이의 엄마로서만 살기엔 답답한 심정 등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 시간에 대해 말해주시겠어요?
조급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딸이 빨리 성장하기를 바랬던 거죠. 우리나라에선 여성의 산후우울증도 개인적인 문제로 보고 출산 후 빨리 복귀하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누구나 그런 일이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저도 출산 직전까지 일을 했고 출산 후에도 바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이가 미숙아로 나오면서 고생을 했어요. 누가 강요하지 않았지만 일로 복귀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아이를 재우고 일을 해보려고도 했지만 체력적으로 너무 한계에 부딪혀 사무실에 전화해 못하겠다고 막 울었던 일이 생각나네요. 결국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을 포기했는데 살면서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벽을 처음 느꼈어요. 아이의 엄마로만 있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기지 못했어요. 나는 왜 안 될까 자책하면서 스스로 억압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예술의 테두리 안에서 했던 교육이나 퍼실리테이터 등의 일에서는 백 프로 만족하지 못했어요. 영화를 빨리 만들고 싶었는데 8년의 시간이 필요했네요.
영화를 보면 권우정 감독의 어머니하고의 관계가
오히려 권우정 감독을 더 불안하게 만든 원인인 것도 같은데요.
좀 더 이야기를 해주 시겠어요?
네. 아이의 까치발이 아니라도 불안했을 것 같아요. 결혼으로 인해 달라진 조건과 환경에서 아이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기보다 결혼 이전의 정체성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딸로 남고 싶었던 거죠. 결혼을 반대한 어머니하고의 틀어진 관계를 다시 원상복귀시키고 싶었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장애자녀가 있으면 엄마가 돌볼 수밖에 없는 조건이잖아요. 그래서 내 인생에서 딸을 돌보는 엄마로서의 역할이 더 커지는 것에 대해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머니하고의 애착관계가 심해서 어머니한테 의존하면서도 인정받고 싶은 게 너무 컸어요. 어머니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온전히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했던 사람이었죠.
영화 작업이 곧 자기와의 대면의 과정이었던 것 같네요.
그 과정에 서 변화된 것이 있을까요?
모든 인간이 계속해서 자기를 들여다보고 자기를 투영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그럼에도 변화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죄책감에서 완전히 벗어나거나 어머니로부터의 완전한 독립 같은 것은 쉽지 않은 문제에요. 그래도 아이의 까치발에 대해 거리두기를 할 수 있던 점은 큰 변화는 아니어도 아이하고의 관계에서 아이를 독립적인 존재로 보려는 마음이 생겼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삶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가 생긴 것도 같아요. 아이의 장애 정도가 경하든 중하든 간에 엄마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아이들을 바라보는 태도나 자기 삶의 만족도가 달라지더라구요. 영화를 만들면서 각자의 가치관의 문제였구나 하는 것을 배웠어요. 내가 어떤 것에 행복의 가치를 두는지, 그리고 아이하
고의 관계에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것, 불안의 몫이 아이의 몫이지 내 몫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장애자녀 부모들 인터뷰가 많이 나오는데 기억에 남는 인터뷰를 소개해주세요.
그 분의 아들이 뇌성마비고 딸의 경우와 비슷하기도 해서 더 기억나는 것 같긴 한데요. 그 분이 거리두기를 통해서, 아들에게 했던 자신의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아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얘기를 해줘서 인상이 깊었어요. 잘못을 알고 나서도 여전히 아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는 말까지 하셔서 어떤 과정을 한 번 겪었다고 쉽게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새롭게 느꼈어요. 인권 강사로 활동하면서도 그 분은 아들에게 ‘하지마’, ‘하지마’, ‘발’, ‘발’을 반복해서 말했고, 그런 말에 아들은 친구들이 놀리는 것 보다 더 상처를 받았다고 해요.
또 다른 분으로는 휠체어타고 인터뷰한 분이 계신데 엄마한테 듣고 싶은 말이 “괜찮아”라는 말이었다는 내용이 인상에 남아요. 영화에는 빠졌지만 제가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에 대해 마음 속 보상 같은 것을 찾고 있을 때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준 분이 계셨어요. 이분은 아이가 웃는 모습만 바라봐도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거짓말 같지는 않았어요. 아이와 함께 있는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는데 내가 또 하나의 편견으로 장애자녀 엄마에 대해 동정심을 가져야한다는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닌지 반성을 했어요.
다큐멘터리 한 편을 만드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잖아요.
비생산적이고 비경제적인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작업을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영화나 예술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스토리텔러인 것 같아요. 말하고 싶은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죠. 무엇으로 매개하느냐의 방식이 다른 것뿐인데 저한테는 그게 영화였고 내가 만든 영화가 응원 받으면 좋겠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보고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감독보다는 기자나 평론가가 되고 싶었는데 예술영화 보면서 잘난 척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FM 음악방송에 나온 정성일 평론가의 영화 얘기가 너무 재밌어서 방송에서 소개한 영화는 꼭 보고 해석하는 것을 즐겼어요, 오타쿠로 갈 수도 있었는데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면서 선배들이 언론운동 쪽으로 많이 갔고 선배의 소개로 수강한 시민 VJ 교육 과정의 강사가 다큐 감독이어서 자연스
럽게 영상을 통해 사회운동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이 길로 오게 되었어요.
십 오년 있다 보니까 저널리즘으로서의 다큐의 힘보다는 내가 갖고 있는 사회적 관계 안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사람들과 같이 얘기하고 싶어요. <땅의 여자>나 <농가일가>는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자기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로 척박한 사회에서 외면하고 싶은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내가 원하는 이야기, 할 이야기가 많아졌다는 게 영화 만드는 이유이기도 해요.
관객들이 영화 <까치발>을 어떻게 봐주길 기대하나요?
공감 백 프로, 위로의 에세이 영화라고 한 것처럼 내가 어떤 포지션에 있든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영화를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해 응원 받고 힐링받으면 좋겠다는 것이 감독으로서의 욕심이에요. 뻔할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기 삶에 대해 스스로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죠. 사람을 움직이는 게 결국 마음인데 마음을 움직이는 게 제일 어렵잖아요. 그래서 영화 만드는게 쉽지 않아도 계속하고 싶은 것 같아요.
10년 또는 20년 후의 감독님을 상상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어렵네요. 잘 그려지지 않아요. 예술 활동이나 교육활동이 당장 내년을 내다보기 힘들잖아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있어요. 다만 사람들하고의 관계성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관계 맺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답답한 어른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권우정 감독은 영화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어갔다고 표현하는데 이제 관객으로서의 내가 권우정 감독에게 당신은 괴물이 아니라고,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고, 당신은 예쁜 딸이 있어서 행복하겠다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응원을 보낸다. 우리 모두에게 “괜찮아” 라고 말하고 싶고 서로의 짐을 나눠지면 지금보다 조금은 편하고, 행복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좋은 영화 만들어준 권우정 감독에게 감사드리고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올 해 여성영화제에서도 <까치발>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나는 이제부터 영화
<까치발>의 홍보대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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