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배우 김한, 연출가 전웅
글 문지원
겨울 추위를 몰아내던 해가 반갑기도 잠시, 따스함이 더위라는 말로 부담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한 6월의 어느 주말에 혜화를 찾았다. 혜화에는 다가오는 여름 더위만큼 뜨거운 젊은 연극제가 한창이었다. 거리마다 젊은 연극인들의 열정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한창 꿈 많은 연극학과 전공생들이 준비한 연극을 한 편 보고나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힘들다고 소문난 요즘 청춘, 요즘 청년들. 불안하고 힘든 시대에 예술을 하는 것은 어떤 마음에서 나오는 열정이 있어서일까? 다른 예술도 아닌 연극인의 길을 가고자 하는 청년이란 어떤 존재일까? 부담스럽던 노란 햇빛도 주황빛을 띄며 점차 누그러지는 시간, 20대의 한복판에 서 있는 두 예술인을 만나보았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전웅 : 안녕하세요, 26살 전웅이라고 합니다. 현재 프랑스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연극동아리에 들어가서 활동하다가 이제는 팀을 만들어서 연극 연출을 하고 있습니다.
김한 : 제 이름은 김한이고, 26살입니다. ‘한’이라는 이름은 순우리 말인데, ‘우리’라는 뜻이에요. 배우로서 계속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 공연을 올리셨죠?
김한 : 네. 최근에 <묵묵부담>이라는 연극을 하나 올렸고, 공연을 올리는 시기에 단편 영화 하나를 찍었어요. 다음 달에 단편영화를 하나 찍을 예정인데, 자꾸 들어오는 역할이 30대 초반이라.... ‘아 이쪽이다.’ (웃음) 이렇게 생각이 드는 참이에요.
하하하. 맞아요. 최근에 하신 공연 <묵묵부담>을 봤는데, 거기서도 나이 있는 역할이었잖아요. 연기를 굉장히 잘 하셔서 놀랐어요! 진짜 아버지 같았거든요. 사투리도 이번에 배운 거라면서요.
김한 : 되게 힘들었어요. 이 작품을 제가 썼는데, 쓸 때는 이 캐릭터를 연기하게 될 줄 모르고, 나중에 누가 잘 하겠지 싶었는데, 나중에 연출이 그 역할을 저한테 맡기더라구요. (웃음)
전웅 : 그게 자기인지 몰랐어. (웃음)
그럼 대본을 쓸 때, 그 역할을 맡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김한 : 사실 글을 쓰면서 출연하는 것도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연출이 이 역할을 맡겨서 당황했죠. ‘어, 나 전라도 사투리 못 하는데.’ (웃음) 독학으로 연구하다가 나중에는 전남 사투리를 쓰는 친구의 도움을 받기도 했죠.
창작부터 출연까지, 무대를 위해 공을 아주 많이 들이셨네요. 대체 연극의 어떤 매력에 빠진 건가요?
김한 : <묵묵부담>을 하면서 느낀 건, 직접 쓴 내 글을 관객들이 공감해주었을 때 가장 좋다는 점이예요, 나의 고민거리를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또 타장르에 비해 연극의 매력은 기승전결이 있다는 거?
전웅 : 결국은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건데, 그 얘기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공연을 만든다는 거 자체가 되게 매력 있는 것 같아요. 같이 고민하고, 그 고민을 관객과 공유하는 그 느낌이 좋아요.
김한 : 마지막 순간까지 만들어가는 게 연극인거 같아요.
굉장한 명언이네요! 그럼 연극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나요?
김한 : 연극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중학교 삼학년 때인데요. 제가 공부를 좀 잘 했는데, 나름 전교 50등 안에 들었습니다. (웃음) 별 다른 꿈은 없었어요. 하루는 처음으로 반 전체가 혜화로 공연을 보러 갔는데, <완득이>라는 공연을 봤어요. 연극을 처음 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멋지다, 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진학을 연극부가 있는 곳으로 갔죠. 생애 첫 오디션은 고등학교 연극부 오디션이었어요.
전웅 : 저는 대학교 진학 후 연극 연출을 해보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과 학회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뮤지컬 버전으로, 원어로 공연했어요. 제가 재수를 해서 동기보다 나이가 많은데, 한 학번 위의 선배랑 동갑이니까 친구가 됐죠. 그 때 그 친구가 동아리 장이었어요. 그 친구가 제게 공동으로 연출을 하자고 해서 우연히 하게 되었는데 흥미가 생겼어요. 그리고 마침 당시 같이 활동했던 형이 대학로에 스태프 자리를 소개해줘서 음향 오퍼를 했었죠. 이걸 하면서 안산에서 혜화까지 왔다 갔다 했는데, 피곤한데 재미있었어요. ‘이거 한번 제대로 해 보면 어떨까.’ 이 생각이 들어서 군대를 갔다 와서는 제대로 해보자고 생각했죠.
진로를 정할 때의 두려움이나 힘든 점이 있었나요? 아니면 과감하게 이 길을 선택했나요?
김한 :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는 힘들다는 말을 해주기도 했고, 하다가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는데.... 그래도 그 때는 피부로 와 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새는 와 닿기는 해요. (웃음)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건 역시 경제적인 부분이죠. 그래서 여러 단기알바를 하면서 연기를 하고 있죠.
전웅 : 저는 천천히 결정했어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일단은 경험을 많이 해보자, 라는 마음에서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해서 그런지 어려움은 없었어요. 점점 경험을 해보다가 이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쉽지 않은 길이죠. 아니, 이렇게 힘든 길을 가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한 : 계획성이 없어서? (웃음)
전웅 : 그냥 하는 거죠.
김한 : 목표를 먼 미래부터 잡는 것 보다는 현재에 충실하자는 마인드가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즐거운 일을 하자! 지금도 연기를 하는 게 즐겁지 않으면 그만둘 거예요.
전웅 : 어렸을 때부터 되게 성숙했네요. 보통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을 잘 못할 텐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안 하면 몹시 게을러지는 스타일이어서요. 직장생활을 한다고 하면, 나가기 싫으면 안 나갔을 것 같아요. 반복적이고 규칙적이기만 한 일은 힘들었을 거예요.
출근하기 싫을 때 출근을 안 하는 건 어떤 의미로 대단한데요? (웃음)
이 길을 안 갔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김한 : 저는 이 길을 안 간다는 생각을 딱히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전웅 : 아마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거나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제가 단순 업무를 길게 하는 성향이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일은 길게 못했을 것 같아요.
두 분 다 연극을 해야만 하는 운명 같아요.
두 분은 작년 성북구에서 진행했던 <올스타즈>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셨잖아요.
하시면서 어떠셨어요?
김한 : 저는 한 연출가하고 오래 작업했었는데, 이번 기회로 다른 연출가를 만나서 신선했어요. 다양한 연극 세계가 있고, 이런 연극의 세계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새로운 방식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었고, 이 연출님의 세계를 더 알아가고 싶다고 느꼈던 게 참 좋았어요. 가장 좋았던 건 연출님이 항상 제게 믿음을 주셨던 거. 연기를 하면 확신이 없기도 했는데, 항상 어떤 방식으로든 믿음을 채워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전웅 : 일단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정말 감사한 기회였어요. 외부사람과 함께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지금까지는 이 길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과 작업을 했는데, 이번처럼 예술계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작업하는 그 자체가 좋았죠. 그리고 주변에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 기회로 많이 만나서 좋았어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인상적인 게 있었나요?
전웅 : 특히 연출님이 모르는 걸 탁 내려놓고 다 같이 고민해가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고 편했어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놀라워요.
김한 : 다양한 나이대의 분들과 작업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어요. 사람을 만나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을 만나는 거잖아요.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서로를 존중해주는 멋진 어른들이 많았어요.
이번에는 각자 생활하고 계시는 지역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예술인으로서, 각자의 지역에서 활동할 때, 지역마다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에 있어 차이를 느끼시나요?
김한 : 차이가 크다고 생각해요. 김포는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별로 없는데 서울은 많잖아요.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김포시는 주로 노년층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가족단위 등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죠. 김포시에도 아트홀 같은 곳이 있는데, 그런 공간이 비어있을 때 청년들에게 자주 열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김포시 청년네트워크 같은 게 있어도 좋을 것 같네요.
전웅 : 안산에는 안산문화재단이 있어요. 다른 곳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는데, 무언가 시도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대학생 예술 활동 지원프로그램으로, 야외극을 위한 야외공간을 공연무대로 지원해주는 게 있더라고요. 안산 거리극도 있고.
흥미롭네요. 서울시도 최근 청년예술인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많이 실시하더라고요. 앞으로도 청년예술인을 위한 지원이 많으면 청년예술인들이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지금은 많은 것이 자리 잡히지 않은 청춘의 한복판에 서 계신데, 20년 후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나요?
김한 : 아내랑 오순도순 살고 있을 것 같아요. 집안일 좋아하거든요. 꼼꼼하게 하는 성향이라. (웃음) 집안일 꼼꼼하게 하면서 아내랑 함께 ....
전웅 : 물걸레질 하면서.
김한 : 그 즈음이면 기계가 해주지 않을까?
전웅 : 그건 돈 있는 집에서, 없으면 직접 짜야죠. 자기 노동력으로. (웃음) 전 계속 연극하고 싶어요.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같이 작업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믿고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들.
멋진 생각이네요!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있나요?
전웅 : 지금은..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김한 : 난 없는 거야, 거기에?
전웅 : 찾아가고 있다 ...고 ....
그러니까, ‘아직 못만났다’는 거네요. (웃음)
전웅 : 참, 이 자리 어렵네요. (웃음)
농담이에요. 이제 질문이 하나밖에 안 남았어요! 마지막으로, 20년 후의 자신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20년 후면, 46세네요, 두 분 모두.
김한 : 행복하니. (웃음) 뭐, 인생은 언제나 계획처럼 되지 않고, 언제나 힘들겠지만, 행복했으면 좋겠다. 살면서 후회되는 일도 많겠지만, 그 순간에는 행복하자.
전웅 : 살면서 처음 해보네요. 생각 없고 많이 흔들리는 애인데, 많이 컸기를 바래. 정신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그리고 이제는 겪어온 과정들에 비해서 평탄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래.
행복하자.
두 시간 남짓, 두 청년과의 인터뷰는 어느새 끝에 다다랐다.
절정의 더위도 노을과 함께 사그라진 지 오래. 이렇듯 시간은 시나브로 흐르고 순간은 돌아보면 지나있다. 두 청년 예술인들에게 일어날 앞으로의 모든 일들 또한 그러할 것이다. 부디 시간의 역사를 잘 쌓아 그들만의 빛나는 연극을 완성하기를 기원하며, 인터뷰가 끝난 후에 홀로 그들의 기승전결을 궁금해 해본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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