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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야책_3호

ㅇㅇ!! 결혼했다!!

글 노지혜

 

 함께 일하던 유치원 선생님 중 한 명은 결혼한 지 2년 된 신혼이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형부랑 결혼할 때 진짜 귓가에 종소리가 났어요?’

 

 내가 지금 남편이 된 사람을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동료 교사에게 물어본 결혼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이었다. 그 선생님은 특유의 애교 섞인 톤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음~ 아니!’

 

 역시... 종소리가 나는 사람들만 하는게 아니었어... ! 나도 할 수 있겠다. 결.혼.

 

 남편과 만난 지 2개월째 우리는 결혼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냈다. 아직 20대 중반을 향해 쏜살같이 달리기하는 그와 20대 후반을 향해 느림보 달리기를 하던 내가 말이다.

 

 양가 부모님과 우리 나름대로의 우여곡절을 겪은 후 결혼 승낙을 받고, 그렇게 우리는 남들과 조금 다른 결혼 준비를 해 보고자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결혼 준비는 정말 어른들의 세계였다. 내가 생각하던 어른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관계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혼 앞에서 나는 턱없이 부족한 어린 아이 같았다. 단지 우리는 하나가 되고 싶을 뿐인데 뭐 이리 어려운 관문들이 많고, 또 평소에 접해보지 못한 단어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당차게 시작했던 나의 결혼 준비는 어느새 제 계절이 지나버린 꽃처럼 시들해졌다. 그런 나의 모습에 남편은 개의치 않았다. 아마도 그의 순수함이 나를 여
기까지 오게 해 줬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했고, 소꿉놀이를 시작했다. 내가 근무하는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할 때 적절한 놀이 행동을 하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하며, 유아들의 수준에 맞지 않는 놀이를 하거나, 또는 갈등상황이 생기면 선생님이라는 중재자가 나타나 그들의 상황을 중재함으로써 보다 질 높은 놀이형성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우리 소꿉놀이에는 그런 중재자가 없다. 더 이상 부모님께 결혼 전처럼 청소를 바라지도 못하고, 금전적 도움을 바라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스스로 꾸려나가야 했다.

(다행히도 양가 부모님의 친절함으로 결혼 초기 필요품목은 알뜰하게 만들 수 있었다.)

 

 먼저 결혼 한 친구들이 이야기한다.
‘결혼하고 처음에 생필품 사는 게 만만치 않을 걸?’

‘너희 집들이만 2달은 할 거야ᄏᄏᄏ’ 

‘처음에 엄청 싸울지도 몰라’

 

 우리는 안 그럴 줄 알았지....

 

 나는 소꿉놀이가 별거 있겠나 싶었다.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 해 먹고, 서로 해결 안 되는 문제가 있을 때는 대화로 풀어 나가면 될 것이고, 사람이야 초대하고 싶을 때 초대하면 되는 거지. 뭐 문제 있겠냐 싶었지만, 현실은 그리 쉽게 우리와 타협해 주지 않았다.

 

 1.집들이
 집들이는 즐거웠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에게 집들이만큼 즐거운 파티는 없었다. 물론 성대한 파티에는 후폭풍이 따르기 마련이지. 하지만 남편 성향에는 조금 피곤했을 것 같기도 하다. (나의 남편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좋아하지만 낯을 조금 가리는 성격이 있다.) 집들이라는 것은 살림이 미숙한 우리에게는 뜨거운 감자 같은 도전이었다.


 2. 가계부
 우리 집에서 가계부는 애석하게도 꼼꼼하지 못한 내가 맡고 있다. 그래서 첫 달 가계부에 구멍이 났었다. 내 생각 주머니에도 구멍이 났었다. 문득 엄마가 보고 싶었다. 도대체 엄마들은 이런 가계부를 어떻게 정리하며 그렇게 20년 이상 우리를 키우셨던 걸까? 아이가 생기면 엄마를 더 존경하게 된다던데, 나는 가계부만 써도 엄마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집 관련 유지비, 보험, 적금, 생활비, 용돈, 경조사비, 병원비 등등!

 

 하.... 살려주세요. 생각만 해도 머리에 불이 붙고 그동안 숫자에 관심 없었던 내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손 놓고 있을 순 없고 누군가에게 우리의 가계생활을 맡길 수도 없는 터. 처음에는 수기로 적는 두꺼운 노트 가계부를 샀으나, 유치원 선생님 중 먼저 결혼한 선생님이 알려주는 가계부 어플로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쓰고 또 쓰고, 처음 한두 달은 역시나 맞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계부도 석 달을 넘어가니 제법 손에 익고, 고정 유지비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남는 비용도 생기고 우리가 어떻게 어디에 쓰고 있는지가 보인다! 유레카~! 그리고 나름 노하우라고 하는 작은 꼼수(?)들이 생겨난다. 달마다 가계부 마감을 하고 금액이 딱 맞아 떨어질 때, 한 달 통계를 보고 올바른 소비를 했을 때 희열을 느끼는 나는 아무래도 점점 숫자와 친해지고 있는 듯하다. 가계부 덕분에 점점 꼼꼼해지는 나라
는 사람의 성장을 느낀다.

 

 3. 조화로운 생활
 막상 결혼을 하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살아가려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연애할 땐 한 번도 싸운 적 없고 생각 한 번 다르지 않고, 동시에 같은 말을 데이트 매 순간마다 하던 천생연분 우리 둘이었는데 같이 살게 되니 이렇게 서로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구나 싶다. 어느 티비 프로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연애를 할 때 보여 주는 모습은 상대방에게 매혹이 되어 내가 보여 주고 싶은 나의 가장 좋은 모습이라고. 우리 역시 그랬구나 싶다. 나는 생각보다 너~무 복잡한 성격이고 남편은 너~무 단순한 성격이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는 둘 다 일을 하므로 가사분담을 따로 정하지 않고, 먼저 손닿는 사람이 하는 것으로 암묵적인 약속을 했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요리를 조금 더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내가 저녁을 차려내고, 저녁을 먹은 남편은 설거지를 하는 일상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즈음,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설거지를 미루고 다음날 하는 것이 아닌가! 매번 그러진 않았지만 빈도가 늘어감에 따라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인 나는 고뇌하기 시작했다. ‘이걸 말 한다면.... 가사분담이 정해지는 게 되는 건가? 그럼 나는 앞으로 계속 저녁을 해야 하며, 남편은 계속 설거지만 신경 쓰고 저녁 차리기에는 신경을 안 쓰게 되는 것 아닐까? 괜히 이런 걸 말해서 속 좁은 아내가 되는 것 아니야? 그냥 내가 할까?’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그렇게 고민 고민을 하며 속앓이를 하다가 어느 날 저녁 그릇들이 설거지통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이렇게 얘기했다. ‘민호, 여기 설거지 좀 해야겠다.’

 

남편의 표정이 굳는다. 그 순간 무엇인가 가슴속에 울렁하는 것이 있었지만, 처음 기 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는 그런 이야기를 주워 들었던 나는 못 본 체하고 자리를 비켰다. 그리고는 여섯 살 아이들보다도 못한 첫 말다툼을 하고는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니 나는 그동안 이야기 하지 않고 쌓아두었던 것이 화근이 되어 지시적인 어투로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그런 남편은 나의 말투가 꼭 자신만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다가와 순간적으로 속이 상했다고 한다. 

뭐.... 결론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고 자신이 편한 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화해를 했다. 설거지 사건 외에도 우리에게는 몇몇의 작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서로의 생활습관과 살아왔던 환경이 달라 생길 수밖에 없는 마찰들인 것 같다.

 4. 반려견
 우리에게는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반려견이 생겼다. 아주 귀여운 웰시코기 ‘콕’이라는 막내다. 나의 죽기 전 이루고 싶은 꿈 중 하나가 웰시코기와 함께 사는 것이었다. 남편에게도 연애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종종 했었고, 결혼해서도 자기 전에 항상 SNS에 올라오는 웰시코기 영상을 보며 그 꿈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에게 ‘콕’이라는 예쁜 강아지를 만날 기회가 생겼고 우리는 신혼과 동시에 반려견과도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너무 예쁜 콕! 콕이를 데려왔을 당시에는 남편이 잠시 일을 쉬고 있어 콕이와 함께 생활하는 날이 많았다. 나는 일이 끝나고 항상 놀아주곤 했는데 콕이가 커가면서 입질이 시작된 것이다.

초보맘(?)인 나는 인터넷에 ‘강아지 입질’, ‘강아지 입질 훈련’ 등등 이것저것 검색을 하며 콕이
의 무는 습관과 어미견으로부터 채 받지 못했던 사회화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콕이에게 너무 가혹하다며,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이야기에 나는 살짝 흔들렸지만 콕이도 언젠가 밖에 나가 다른 강아지와 다른 사람들과 건강하게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한다는 신념으로 남편에게 나의 주장을 폈다. 강아지를 보호하고 함께 살아가는 데 정답은 없었다. 그저 남편의 방식과 나의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그렇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생각해보니 꼭
아이를 두고 누구의 양육방식이 맞는가를 논하는 것 같았다. 결론은 단호할 때는 단호히, 수용할 때는 너그럽게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콕이는 현재도 아주 늠름하고 건강한 웰시코기로 잘 자라고 있고, 여러 사람의 사랑도 듬뿍 받는 건강한 개린이로 성장 중이다. 만약 콕이가 내 말만 들었다면 약간은 장난을 모르는 개로 자랐겠지만, 남편의 부드러운 성격 덕에 콕이가 지금처럼 멋지게 자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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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막내 콕♥

 우리에게는 이렇게 챌린지 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다행히 이런 일들 중 첫 번째 일은 무사히 넘긴 것 같은데, 우리에게 있어 나머지 일들은 평생 함께 끊임없이 같이 부단히 노력하고, 연구해야 할 숙제이자 우리의 평생 목표일 것 같다! 나와 남편 모두 막내라 서로의 부모님으로부터 물심양면으로 감사한 보살핌을 받고 자라서인지, 가끔 의견충돌이 일어나면 서로의 막내부심이 스멀스멀 올라와 막내스러운 주장을 하곤 하는데(막내폄하라기 보다는 보통 막내들이 가진 어리광스러운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게 이야기 하다보면 재밌을 때도 있고, 답답할 때도 있다.


 나는 이제 결혼한 지 200일이 넘어간다. 물론 이렇게 글로 쓰다 보니 결혼 후 200일의 시간동안 예상치 못하고 만난 검은 구름의 소나기 같은 이야기들만을 적었지만, 사실은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가 더 많다. 정말 기상천외한 행동으로 날 웃게 해주는 남편이 있고, 그런 남편에 지고 싶지 않아 더 기상천외한 행동을 해서 같은 웃음을 주는 나. 데이트 후에 헤어지지 않아도 되서 안도하고, 서로 반대 방향 전철에 몸을 싣고 가는 삶에서 같은 방향으로 같이 걷는 삶이 되었다. 

함께 얼굴을 마주 보고 즐겁게 하루 이야기를 하고, 함께 직상 상사 흉을 보기도 하고, 오늘 밖에서 있던 이야기라든지, 콕이가 하루 동안 어떤 사고를 치고, 어떤 것을 배웠는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한 일상. 그리고는 잠들기 전에 온갖 장난을 치며 웃고 떠들다 그렇게 오늘도 서로 고생했다며 토닥토닥 함께 잠드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우리 둘이기에 조화로운 결혼 생활쯤은 잘 해나 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미숙한 우리는 좌충우돌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재밌게 살 것이라고 꼭 다짐 해 본다. 우리의 결혼 생활을 요약하자면.... 오 예!! 결혼했다!! 으악!!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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