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릉야책_3호

전등사와의 인연

전등사

글 허영미

 

 내비는 차 한 대밖에 지날 수 없는 좁은 골목으로, 높은 곳을 향해 나를 데리고 갔다. 눈이 오면 가보겠다고, 한번 놀러 오라는 스님의 말씀에 그렇게 얘기를 했었다. 그랬던 내가 오늘 A와 스님이 옮겨 가셨다는 달마사로 가고 있었다. 불교 신자인 그녀는 힘들 때면 절에 간다는 얘기를 자주 했었다. 좀 쉬게 해주고 싶기도 하고 힐링이 될 수 있도록 그녀가 좋아하는 절에 데려가고 싶었다. 그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난 어려서부터 왠지 모르게 절을 무서워했다. 그런데, 몇 년 전, 좀 쉬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쉴 곳을 찾을 때, 지인 소개로 한 번 가보고 괜찮으면 계속 있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전등사 템플스테이를 찾게 되었다. 삼시세끼 식사가 해결 된다는 게 나에겐 큰 매력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혼자 식당에서 여러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는 게 생각만 해도 쉽지 않았다. 물론 아무리 식사 해결이 잘 되어도, ‘아니면 아니었겠지만.’ 하룻밤을 지내보니 생각보다 훨씬 전등사는 편안했고 산사의 아름다움이 나를 매료시켰다.


 템플스테이 숙소는 깨끗하고 정갈해서 더더욱 편안했던 것 같다. 성수기 때는 다른 사람과 같이 방을 쓰는 날도 며칠 있었는데, 그것도 나름 괜찮았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과 함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상대방을 위해 배려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 서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산사에서의 일상은 남다른 경험과 함께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비, 바람, 태양, 구름, 하늘, 별들과 함께. 맑고 화창한 여름날을 보내기도 했고, 비 오는 산사를 경험하기도 했다. 아주 고요하고 적막한, 정말 가슴이 쨍 하도록 먹먹해지는 비 오는 깜깜한 절간. 작은 불빛 하나만 비치는 어두운 산사는 빗소리로 가득했다. 며칠 비가 내려 칠흑 같은 산사의 밤풍경과 함께 빗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 오는 어두운 밤 산사를 거니는 기분은 뭐랄까...
표현할 수 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그야 말로 절간 같은 절간 속에, 그 조용한 산사에서 희미한 작은 불빛과 빗소리는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빗소리에 잠이 오지 않았다. 우산을 쓰고 산사를 거닐었다. 살면서 경험하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 유난히도 맑던 그날, 밤하늘의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숙소 툇마루에서 고개를 들고 별을 보다 마당으로 나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누워서 볼 수 있었다. 아 서울에서 이렇게 조금만 떨어져도 저 수많은 별을 볼 수 있구나....

 


 행복했다. 처음 본 낯선 여인인 룸메이트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행복해 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전등사에서 지내면서 심심 하다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일찍 일어나게 되면 아침 공양을 하고 산사를 거닐고 점심을 먹고 또 산사를 거닐었다. 저녁이 되면 공양을 하고 아름다운 산사에 앉아 있다 걷고 싶으면 또 걸었다. 떠나면서 책을 몇권 가지고 갔었지만 책을 몇 장 보다 보면 눈이 책에 계속 머물지를 않았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나의 일상은 산사를 거니는 게 전부였다. 힘들면 앉아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바람을 느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전등사 주위에는 큰 소나무가 참 많다. 위풍당당하고 멋진 소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힐링이 되었다. 소나무가 많아서 전등사가 더 좋았다. 내가 머무는 동안 맑고 화창한 날이 대부분이기는 했지만, 바람소리, 빗소리. 자연과 함께 한 시간들. 지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설렌다. 그랬다. 내 맘이 그러했다. 먹고 자고 거닐고 보고 멍하게 무념무상의 시간들을 보냈다.


 나는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다른 참가자들처럼 프로그램에 다 참여하지 않았다. 물론 휴식 형 템플스테이라서 가능했었다.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산사를 유유히 거닐며 오래도록 머무는 걸 보시고 스님들께서 하루 이틀 지나자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았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 하는 사람들이 스님과 차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낯선 사람들과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첫 차담 시간은 내게는 조금 불편한 자리였다. 다른 분들이 첫 대면 하는 자리에서 맘을 열고 속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차담 시간이 조금씩 편해지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스님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절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고 이 모든 것들이 믿기지 않는 꿈을 꾼 것 같다. 살면서 생각지 못한 상황에 처하거나 경험하게 되는 일이 가끔 생기는데 내게 있어서 전등사 템플스테이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절(전등사)과의 인연은 지금 나에게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정릉야책'에 속해 있으며 무단 도용 및 복사를 금합니다.

'정릉야책_3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옛 것)  (0) 2019.12.06
숲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0) 2019.12.06
그냥 떠난 러시아  (0) 2019.12.06
ㅇㅇ!! 결혼했다!!  (0) 2019.12.06
막걸리를 찾아서 - 뜬금여행기2  (0) 2019.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