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릉야책_3호

숲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국민대 숲 해설가 양성과정을 마치며

 

글 김은희

 

 내가 숲 해설가라는 직업이 있다고 알게 된 것은 2년 전쯤이다. 지인으로부터 숲 해설가 권유를 받았을 때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산을 다니는데 전문가가 필요한 것인가?” 그저 산은 내가 필요할 때 올라갔다 즐기다 내려오면 되는 곳 아닌가! 숲 해설 전문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시간은 흐르고 흘러 예기치 못했던 삶의 변수는 내게도 찾아왔고 곡절 많은 강폭이 아름다운 것처럼 인생의 강은 또 한 번 돌아가는 굴곡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작년 말 30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퇴직한 후 바뀐 생활패턴 속에서 2년간 머뭇거렸던 숲 해설가 공부를 해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심이 흐트러지기 전에 숲 해설가 교육 과정에 당차게 등록하게 된 것이다.

 

 교육과정은 5개월간 110시간의 이론 수업과 30시간의 현장실습을 마치고 필기시험을 치른 후 각자 공부해서 준비한 숲 해설 실습 시연을 해야만 숲 해설가 자격증을 취득할 수가 있었다. 단순히 수업일수 만 채워서 받는 국가 자격증이 아닌 것이었다. 일주일에 3번 월, 수, 토. 결코 만만치 않는 수업일정과 짧은 기간에 많은 공부를 해야 하기에 나태했던 생활의 시간을 고삐 잡듯 당겨야만 주어진 수업일수를 맞추고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졌다.

 
 3월 첫 수업시간. 모든 수강생들이 어떤 동기로 무엇 때문에 이 생소한 교육과정을 배우려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만만치 않는 수강료에 시간과 돈만 허비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과 두려운 마음이 익숙하게 찾아 왔었다. 숲 해설가 과정을 처음 개설하고 도입한 곳, 즉 주관하는 곳은 국민대학교 평생교육원이라 한다. 지금은 전국 여러 기관에서 활발히 행해지고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조기 퇴직자가 많아지고 안정적인 직장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지금에 사람들은 좀 더 새롭고 자유로운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리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러다보니 이 과정도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 매년 배움의 길을 찾아오는 곳이다. 연령대는 40대도 더러 있지만 거의 50
대에서 60대 중후반분들이 많으시다.

 

 5개월 간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의 강사들은 각 대학의 산림전문가 22명으로 구성되었는데 모두 각계의 저명한 교수들이라고 했다. 숲 하나의 생태계를 이해하는데 정말로 많은 과목이 필요한 사실이 의아했고 다양한 숲 분야가 새롭게 다가왔다. 삶도 그렇듯 전문가는 어느 곳이든 차고 넘쳐 난다. 거의 매 수업마다 강사진이 바뀌기에 어떤 때는 지루하다가도 어느 날은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느 날은 여러 교수에게 수업을 받다보니 내가 지금 무엇을 배우는지 교육내용이 뒤죽박죽 섞여 혼란스럽기도 했었다.

 

 수업은 산림전문용어와 주변에서 자주 접하던 나무부터 혹은 전혀 생소한 나무와 식물, 산림과 토양 등 숲과 관련된 전반적 자연생태계를 망라하여 배우게 되는 데, 나무와 꽃들에 대해서만 알고 가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교육과정이 심도 있게 진행되어 진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 심란한 마음도 들었었다. 교수들은 산림분야에 평생 뼈를 묻고 사신 분들답게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들이었고 강의 내용은 꽤 높은 수준이었다. 따라서 그 분야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전문용어로 나열 되는 시간이 많아서 암담한 절벽을 마주 한 듯 했다. 무사히 끝마칠 수 있을까하는 부담감과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괜스
레 도전했나하는 후회도 생겨났다. 수강생 중에는 숲에 대해 상당 부분 지식이 충만하신 분도 있었고 숲에 관련된 일을 하면서 추가 자격증을 경력에 보태기 위해, 즉 스펙을 쌓으러 오신 분들도 있어서 내가 느낀 상대적 박탈감은 덧가지처럼 생겨나 자신감은 점점 떨어지고 말았다.

 

 숲 해설가가 되기 위한 것이 ‘단순한 마음으로 입문한 것이 아니다’라는 오기가 생겨나서 여기서 도태되지 않고 어떻게든 이 관문을 넘어야 한다는 생각에 모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인 후 내가 숲으로 걸어 들어갈 마음을 다시 새롭게 다잡아 조금씩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숲과 관련된 책을 읽고 외우고 또 읽고 하는 수밖에 쉬운 길을 찾을 수는 없겠다는 결의를 하게되었다. 그 후 도서관으로 쫓아가 숲과 관련된 책들을 눈에 들어오는 대로, 느낌이 가는 대로 골라 밤을 새워가며 먹어도 배가 고픈 아귀 귀신처럼 머리에 구겨 넣듯 막무가내로 입력을 시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빌려온 책 가운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있었고, 아 이런 책들도 있었구나하고 인간의 능력이 참 대단하고, 그래서 인간이 무섭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다. 의외로 책은 재미가 있었고 이 길을 오지 않았다면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을 것 같았던 책이 어느새 내 머리에 들어앉아 또 다른 지식 에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기 시작했다.

 

 숲 하면 우선은 나무가 대표적 주인공이기에 나무를 중심으로 많은 책들을 접했고 나무를 찾으러 직접 산으로 갔다. 현장 학습 장소로는 집에서 가장 가까워 자주 찾는 개운산을 선택했다. 개운산은 고려대 뒷산에 있는 근린공원으로 사람들이 사는 주거지와 가장 가까이 있는 동네 산이라서 초보자가 수목을 관찰하기에 더없이 좋은 탐구 장소였다. 개운산에는 우리가 어릴 때 보았던 나무들과 꽃이 즐비하게 있었고 간혹 친절하게도 몇몇 나무에는 명패가 부착되어 도감을 보고 공부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운동을 겸한 산책을 통해 나무와 꽃들의 이름을 알아맞혀 보는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하기에는 더없는 장소이다.

 

 그렇게 산을 걸음걸음 다니며 이름 모르는 나무 앞에 멈춰 서길 여러 번! 무명의 야생 꽃잎 앞에 웅크려 앉아 이름을 몰라주었구나 하고 저절로 우러나오는 미안함과 몇 십년동안 보아온 들꽃을 무심히 지나쳐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을 갖고 자세히 챙겨보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느끼고 그동안 무관심 속에 사라져간 꽃과 나무들 그리고 사람들에 미안한 생각이 들어 숙연한 마음이 되었다.

 

 그렇게 산을 오가며 이십여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어 가다보니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 했던가! 무언가 엉킨 것이 물에 녹듯 자연스럽게 어두운 터널을 뚫고 빠져나온 듯 조금씩 숲에 대한 지식이 머릿속에 박혀 밝게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전혀 흥미를 찾지도 느끼지도 못할 것 같던 숲이 더 알고 싶은 대상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자 그 기쁨은 벅찼고 모르는 전문용어와 나무들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그것과 연관되는 사실을 더 찾고 싶어지는 호기심이 더 커지고 있었다. 이제껏 두려웠던 길이 걷고 싶은 오솔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공부했던 내용들이 수업 중 교수들 입에서 나왔을 때 느껴지는 희열감은 온통 솜사탕처럼 나를 부풀려 신바람 속에서 학교 수업에 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학교에서는 외형적인 큰 틀을 만들어 주고 그 안을 채워 가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였던 것이다.

 

 이 거대한 지구 안에 숲을 이루고 있는 숲속 생태계를 모두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가지고 관심 대상이 있는 곳을 향해 부지런히 쫓아가고 자주 찾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임을 알게 될 것이다. 유한한 삶이지만 자연도 끝없는 우주가 아니기에 결국 밝혀지고 알게 되어질 테니까! 탐구에는 왕도가 없다고 하지 않던가! 끊이지 않는 노력만이 답일 듯싶다.


 숲 초보자에게 가장 힘든 것은 실제로 책에서 본 꽃과 나무들이 계절에 따라 변해가면서 한눈에 그 이름을 알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계절에 따라서 이 나무가 저 나무 같고 이 꽃이 저 꽃 같은 생소한 느낌은 오랜 친구의 이름을 다른 이로 착각함에서 오는 미안함으로 다가서곤 한다. 이전에는 숲이나 자연물을 보면 그냥 이쁜 꽃이 폈네, 봄꽃들이 피었네, 단풍이 곱게 물들었구나, 라고 말했다면 이제 그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알게 되어 그에 합당한 이름을 불러 줄 때 그 나무가 친구처럼 더 반갑고 그것들도 나를 알고 반겨줄 것 같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라는 것을 느낀다.

 숲 전문가들이 자주 하는 말은 ‘그 나무와 꽃을 알기 위해서는 면밀히 몇 계절을 돌아서 보아야 하고, 똑같은 나무도 위치와 크기에 따라서 달라 보이기 때문에 세상의 나무와 꽃은 단 한 번도 똑같은 모양을 가진 적이 없다’ 이다. 똑같은 사람이 없듯 자연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더 자세히 관심을 가지고 보다보면 차가운 겨울에 잎새 하나 붙어있지 않은 나무를 보아도 무슨 나무인지를 알게 되는 관찰력이 생긴다고 하신다. 처음에 그 말은 선문답처럼 들렸 지만 이제는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떡이게 한다.

 

 숲 해설가 교육 양성과정 첫머리에는 나무나 꽃들의 이름, 그리고 그 내면을 자세하게 학술적으로 알아야한 다는 생각이 컸다면 2개월이 지날 쯤에는 숲에 있는 나무 와 꽃 이름을 더 완벽하게 알기 위해 숲 해설가 과정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더 큰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이 시대에 숲 해설가가 왜 필요한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숲을 통해 무엇을 전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깨달아가며 숲 해설가의 중요성과 사명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구성이 되어있다.

 

 숲은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이전부터 먼저 주인으로 있었다. 숲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약 3억 5천만 년 전 부터이다. 이에 비하여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약 200만년 전이니 숲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경이로운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어 침묵으로 살아 가기에 그 존재를 외면당하고 인간의 이기심과 문명 앞에 무시당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숲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숲이 주는 혜택, 숲이 주는 효과, 숲의 효능을 통해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어떻게 하면 숲과 상호공생을 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는 숲을 어떻게 관리하고 보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숲 해설가의 제1덕목인 것이다. 숲 해설가는 지식을 아는 체하며 전달하는 자가 아니다.

 

 오랫동안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고착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만의 자아와 갈등을 해왔던 나에게 숲 해설가 교육 과정과 숲 해설가의 이미지는 내 안에 나 스스로 옭아매고 있던 것들을 풀어주는 쾌도 난마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앞으로 나는 숲 해설가로서 많은 사람들이 숲에 대해 이제껏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것을 가장 원초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 원초적이어서 더 순수하고 신비로운 그곳에서 숲을 찾아 오는 많은 사람들과 인생을 얘기하고 싶다. 내가 들려주는 얘기보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숲처럼 들여다 본다면 나는 또 다른 숲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무와 풀을 넘어 큰 숲에서 살아가는 인생살이를 더듬어 보고 싶다. 일상이 지겨울 때 우리는 만사를 제쳐두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막상 떠나서는 빈 가슴에 삶의 노폐물을 내려놓지 못하고 응어리를 다시 내안으로 이고 들어온다. 하지만 누구나 거대한 나무 앞에 서면 마음이 내려 앉아 심안으로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면 어느덧 내 옆에서 나를 토닥거려주는 나무와 숲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숲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 고뇌와 아픔을 극복해주는 안식처가 되는 도량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이 글의 저작권은 '정릉야책'에 속해 있으며 무단 도용 및 복사를 금합니다.

'정릉야책_3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직 곁에 있다 - (정릉동 사진모음)  (0) 2019.12.06
기억(옛 것)  (0) 2019.12.06
전등사와의 인연  (0) 2019.12.06
그냥 떠난 러시아  (0) 2019.12.06
ㅇㅇ!! 결혼했다!!  (0) 2019.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