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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야책_4호

호박이넝쿨책 기행기

심재빈

 

 

 

2019 7.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주를 집에서 꼼작하지 았다. 

보고 싶던 영화와 드라마를 몰아서 보고, 배달 음식과 편의점 군것질로 끼니를 때웠다. 

먹고 싶을  먹고 자고 싶을  잤다. 이불 속은 근했다. 인스턴트 음식은 감미로웠다. 

회사 생활로 탈진한 몸은 그동안  가쁜 패턴을 잊고 나태와 게으름이라는 수분을 솜처럼 빨아들였. 

이날도 특별할  없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기 전까진. 

언제 나를 ' 괜찮은 남자' 비춰주곤 했던 거울이었다. 

 

언제부터 이렇  걸까?” 

 

낯선 이가 거울 속에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공을 원했고 사회 관례에 따라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었다. 

회사원 되어 믹스커피 타는 , 복합기 사용법, 소맥 마는 , 야근 도망치는, 뒷담화 피하는 , 

뒷담화하 ,   나게 아부하는  등을 배웠. 

지금 거울 앞엔 M 탈모가 진행 중인  나온  사내가  있다. 

 모르겠지만  사내도,  괜찮은 남자 되고 싶어   같다. 

마의  곳을 앞머리로 가리고 나온 배는 숨을 들이켜 벨트로 묶었다. 

 배우고 싶던  저런 것들이 아니다.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내가, 나인 채로 나서는 정말 오랜만의 외출. 하늘이 파랗다.

 

노래방에서  별명은 양희은이다. 예전부터 노래를 잘하고 싶었지 별다른 재능이 없는 , 

조금만 음이 높아져도 쇳소리가 나온다. 그러 보니 콧소리를 과하게 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럴 때면 친구들은 배꼽 잡으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다. 

검색을 해보니 가까운 곳에 보컬  학원이 있다. 

애플리케이션 지도대로 길을 따라 걸으니  허름한 가에 도착했다. 

계단을 올라 2 문을 열자 카페 같은 공간이 나왔다. 원이라기보다 여기저기 손길이 닿아 있는 아지트다. 

책장에 삐죽 튀어나온 악보도  나름대로 이야기가 있어 보인다. 레슨 등록을 하려고 장과 마주 앉았다. 

 대화가 6시간 동안이나 이어질지 누가 알았을까.

 

음악에 관련된 얘기는 5분 남짓, 발성 테스트를 한 것도 아니다.

이날 학원 원장과 보컬 레슨 희망생은 그저 죽이 잘 맞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주제랄  없이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끝났나?”  때쯤이면  새로운 주제가 튀어나왔다. 

대화가 길어지자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봐야  드라마도 있었다

(  알았던 대기업 회장인 아버지가 사실은 살아 있었고 기억 상실로 붕어빵 장수가 되었는데, 

딸이  옆을 지나가는 장면에서 이어진다).  기미가 없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입으로 옮겼다. 

원장이  된단.  얘기를 해야 된다고 했다. 몸이 배배 꼬이고, 

 

언제 이렇게 손톱이자랐지?” 

 

손을 폈다 접었다 하며 딴생각을  때쯤 원장이 흥미로운 안을 했다. 

 

같이 시나 동화를 녹음해보면 어떨까요?” 

 

순간  말이 이제 집에 가도 좋다는 말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리하여 대화는 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학원을 빠져나왔을  하늘은 붉은 셀로판지를   노을이  있었다. 숨을 들이키자 기분을 들뜨게 하는 

저녁 공기가 코를 통해 가슴에 차올랐다. 딱히  일은 없었지만 나는 그냥 동네  퀴를 돌다 집에 들어갔다.

 

작심삼일이라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며칠  대충 벗어던져   흐물거리는 티셔츠보다도 

 무기력해 있다. 쉼은  익은 열대의 과일보다도  달콤하다. 등이 방바닥에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무엇과

비교할  없는 행복과 안정이 느껴진다. 만약 성북구 가로수에서 포도 바나나가 열린다면 나는 주저 없이 

모든  내려놓고 디오니소스가 되리라 라고 게으름이 당위성을 찾아갈 때쯤 카톡으로 포스터  장이

전송되어 왔다. 

 

마을미디어 팟캐스트 참여자 모집 

[라디오 DJ부터 PD까지! 팟캐스트 라디오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해 보는 시간]’.

 

학원 원장의 우리가 저번에 얘기한 녹음하고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어 공유해요! 같이 가요!” 라는 메세지와 

함께.  좋아요.” 나는 흔쾌 답장을 보냈다.

 

성북마을미디어지원센터라는 곳에서 녹음을 한다고 한다. 이곳은 릉에 있다고 한다. 정릉, 이곳은 어디인가? 

성북구에 30 가까이 살았. 종종 만취한 상태로 지하철에서 꾸벅 졸다 내릴 곳을 지나치면 태릉에서 

눈을 뜨곤 했다. 정릉은 모르겠다. 이날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 택시 탔다. 오랜만에 타는 택시다. 

회사를 다닐 때는 야근이 일상이었고, 스나 지하철이 끊길 때면 자주 택시를 이용했다. 

낡은 택시에서 나는 유의 코를 찌르는 냄새와 기사 아저씨의 시끄러운 말소리가 내게 최면을 걸어 잠에 

들랑말랑할   왔어요.” 기사 아저씨가 내리란다. 정릉은 가까웠던 것이다! 도착까지 10 남짓, 

나는  원을  준비가 되어 는데 요금은 오천육백 원이었다. 

어리둥절한 채로 택시 문을 닫고 내리 저기 횡단보도 너머로 성북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보인다.

 

모임 장소로 올라와 보니  약속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했다. 

 

내가 장소를 착각을 했나?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건물 내에 있는 카페에서 토스트 하나를 샀다. 

 

속이 든든하면 긴장도  하겠지!”

 

라는 생각이었는데 실수였다. 전자레인지에서  나온 밀가루 덩어리의 식감은 씹을수록 고무를 연상케 했다. 

겉의 버터와 속의 치즈는 적절히  녹아 어쩐지 휘발유 맛을 냈다. 나는  놀라운 맛에 

 

먹어도 괜찮겠?” 

 

의문을 품으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꿀꺽 삼켰고, 당연히 체했다. 사람들은  체기가 무르익을 때쯤 하나  모이기 시작했다.

 

10명의 팟캐스트 지원자들은 카페 테이블을 붙여  둘러앉아 있다. 대부분 40~50 아줌마, 아저씨 같았다. 

가벼운 인사와 소개를 나누고 나니 서로  말이  떨어졌다.  침묵이 이어지고 어색함이 밀물처럼 밀려오더니 

이내 만조가 됐다. 사람들은 질식을 피하기 위해 하나  고개를 숙여 전화 기능이 있는 산소호흡기를 핸드백에서,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들었다. 인생 선배님들도 첫 만남에서 오는 어색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휘발유  고무 토스트로 인한 체기와 어색함이 만들어내 압박감에 호흡이 조금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주인장이라 리는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기를, 프로그램을 진행할 감독이 개인사정으로  늦는단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장은 일어난 김에 아까  자기소개를   했다. 

글을 쓴다고 했고 호박이넝쿨책이라는 책방도 운영한다 .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음악 학원에서   명과 

배우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호박이넝쿨책 사람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문학인의 형적인 생김새를 갖추고 있었는데, 다양한 특징을   있겠지만 만약 하는 일이 문학 쪽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손에 펜과 노트를  쥐여  지금 당장 글을 써보시라 권유하고 싶게 생긴 상이다. 

 

당신은 노인 , 카라마조프의 자매들, 호밀밭의 밀수꾼을  상이오!” 하고. 

 

나는 호박이넝쿨책에 대해서 “KBS 주말 드라마 제목도 아니고…” 라고 잠시 생각할 ,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감독은 내가 질식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도착했다.

 

녹음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방송에서나 보던 라디오 녹음실은 진짜 라디오 DJ 

 듯한 까부는 기분을 내게 사했다. 호박이넝쿨책 아줌마 아저씨들도 좋았다. 

새로운 경험은 가슴 모닥불이 되어 자리했다. 나뭇가지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잔잔한 불로 일렁였다. 

여름이었고, 여름에 어울리는 경험이라 생각했다. 밤바람이 상쾌해 조금 걸었다. 이런 기분을 느낀  얼마 만일까. 

어렸을  자주 느꼈던  같기도 하다. 아마 지금  신이   같다. 신이 것이다!

 

다음 주까지 2 1 팀으로 라디오 코너를 짜오세요.” 

 

교육을 마치 감독이 말했다. 나랑 같이  음악 학원 원장과 실장은 서로 팀을 .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속으로 외쳤다. 나는?!” 홀로 석에서 쭈뼛대고 있었는데, 

연극배우를 한다는 아주머니가 성큼 다가오더니 라디오 코너를 같이 하자고 했다. 

이유는  목소리가 좋아서라고 말했다. 인상도 좋다고 내게 말해줬다. 눈에 거짓이 없었다. 

 이렇게 실된 사람이 좋다. 다음 녹음일이 다가오자, 이제 슬슬 대본을 짜야 하지 않을까 싶어 

 파트너에게 연락을 했다. 

 

안녕하세요. 저희 만나서 코너 짜봐야   같아요.” 라고 카톡을 보내자, 

 

제가 지금 제주도로 놀러왔는데, 도착 일정이 녹음 하루 전날 저녁이에요…. 죄송해요. 

써주시면 그대로 해볼게요.” 라는 답변이 왔다. 

 

여기서 잠깐,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있겠다. 

 

아니, 자기는 놀면서 나보고  해오라고? 어이가 없네?  !” 

 

하지만 나로 말할  같으면 기획팀 일당백  장이다. 

 이마의 머리칼과 맞바꾸어 얻어낸 실무 능력이 빛을 발휘할 때다. 후후후…” 

모두를 놀래킬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비열한 웃음새며 입꼬리가 들썩거렸다. 배우는 배우였다. 

대본을 받고 현장에서 리허설   했을 뿐인데, 며칠을 연습한 나보다 나았다. 발음은 정확했으며, 

목소리에 생동감이 있었다. 프로다. 그에 비해 나는 녹음 큐사인부터 심장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목소리가 뜨고, 

발음이 샜다. 한때 TV 예능에서 소품으로 쓰이 삐오오오오!’ 소릴 내는 노란색 고무 닭이 라디오 녹음을 한다면

지금의  모습일 것이다. 무리해서 힘을 짜내다 보니 의욕이 앞서  꼬이기도 했다. 

대본을  손이 부들거리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뚝뚝떨어졌다. 자신에게 도취되어 

공중파 라디오에서 섭외 들어오면 어쩌? 하고 온갖 망상을 펼친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머리가 하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녹음은 끝나 있었다. 나는 스스로가 못마땅해 어린애처럼 뾰로통해 있는데,

호박이넝쿨 아줌마, 아저씨들은  30철부지에게 돌아가며 잘했는데  그러냐며 달래준다. 

나도 모르게 머쓱함에 머릴 긁적거렸다. 진정이  나는 차분히 스튜디오를 둘러봤다. 

람들 모두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눈가에 다정한 눈빛을 담고 있다. 이들 보고 있자니, 

호박이넝쿨책은 어떤 곳일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나도 여기 끼고 싶다.

 

이후  팀별로 준비한 코너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재구성해 유튜브 올리는 것으로, 성북마을미디어지원센터에서 

하는  5 동안의  과정이 모두 끝났다. 이제 팟캐스트 프로그램이 끝났으니, 나는 집으 돌아가면 된다. 

뒷풀이를 한다고 하는데,  혼자 덩그라니 가서 뭐하겠는가

(보컬 레슨 학원 실장과 원장은 다른 행사 일정으로 도중에 하차했다). 

서먹한  홀로 앉아 음식만 주구장천 주워 먹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니, 혼밥 보다  쓸쓸하고 궁상맞을 뿐이다. 

 

그래, 집에서 게임이나 하자.”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둘러매는데 누가 불러 세운다.

 

DJ(여기서 불리는 별명이다.) 뒤풀이 가야죠? 

 

주인장이다. 등치는 큰데, 문학인 관상인  사람. 

 

치킨이랑 맥주 먹을 건데 같이 안가요?

 

요런 털털한 말씨를 가진 사람이라면   마디는 걸어주지 않을까?!”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저 없이 간다고 했다.

 

밤이 깊어가자, 뒤풀이 또한 깊어간다. 무슨 말이냐면 많이 마셨다는 얘기. 지금  앞엔 마르라는 아저씨가 있는데, 

초지일관 뚱한 표정이다.

 

내가 실수한  있나?” 

 

계속 신경이 쓰인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흠ㅡ 같은 불편한 기색을 내는 중년 남성을 

 목격할  있다. 이들은 대개 대표, 사장, 부장, 과장이라는 직함을  있으며, 담배와 술을 좋아하고, 

앞선 예의 뚱한 표정을 짓곤 한다. 들은 못마땅한 상황이라 판단이 서면 내가 한마디 해야겠군!”, 

내가  가르쳐야 겠군!” 하고 굳게 닫았던 입을 열며 상황을 바로잡는다. 

 자신 나름의 기준대로. 소주 담긴 잔을 홀하고 털어 넣더니 그가 입을 열었다.  것이  것이다! 

 

나는 DJ 처음 봤을  별로였어!” 

 

자리에 흐르는 침묵. 

 

그런데 지그믄 조하 흐흐흐.” 

 

다들 웃음이 터졌다. 다들 , 마시고, 떠들었다. 나도 그들 속에 있었다.

이름을  호박이넝쿨책이라 지었는지 두어  들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함께 하는 사람이 마흔 명이 넘는다는데 아직 반도  봤다. 

어떤 계획이 있다기 보다는 그때그때 재밌는 것들을 한다. 

서로를 부를  명이든 닉네임이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부른다. 나이를 묻지 않는다.

누군가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기도 하지만

 

어휴 너는 그렇게 생겨 먹은 사람이구나! 우리는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야! 반가워!” 

 

이런 느낌이랄까. 뜨거운 열정은 덤이다.   없는 , 나는 이곳에서 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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