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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야책_3호

독립영화들 보러 많이들 와주이소~!

- 영화 보는 <야책>

 

글 김정훈

 

 

 올해도 서울영상위원회에서 야책으로 독립영화들을 가져다 주셨다. 매달 하나씩. 봤던 영화들을 소개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은 바람을 담는다. 상영된 영화들 모두가 괜찮았기에, 앞으로 올 영화들도 괜찮을 것 같기에. 앞으로 영화 보러 많이들 와주이소~~~~~~~.

 

* 소개 글들마다 어투가 다르네요. 영화라는 게 참.... 소개하는 제 어투에도 영향을 끼치는군요;;;

 

 

<어른이 되면> 

(감독 장혜영 출연 장혜정 장혜영 유인서 이은경 : 6월 상영작)

 

 

 이 영화는 감독이 시설에서 살던 서른 한 살의 동생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며 시작된다. 동생이 시설에 들어간 나이가 열 세 살 이니 감독 얘기대로 시설을 탈출하는데 십 팔년의 세월이 지나간 것이다. 그렇게 오래 머문 시설의 환경 탓일까? 동생은 언니에게 지적을 받을 때면 일단은 꼭 소리 지른다. “죄송합니다!” 언니와 택시를 같이 탄 동생이 기사 분께 외친다.
“노래 틀어주세요! 트로트 틀어주세요!” 이 대목에서도 시설의 환경이 대충 짐작된다.

 

 이 쯤 되면 이 영화가 시설의 혹독한 환경에서 자란 동생의 암울한 경험을 얘기할 것으로 짐작들 하시겠으나, 동생의 모든 말과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유쾌한 웃음을 짓게 한다. 분명 이 영화는 발달장애를 지닌 여자의 사회적응 기록이고 그 적응이 녹록치 않음도 보여주고 있으나 이상하게도 내내 유쾌하다. 왜 그럴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감독의 친구들이 스무 명 정도 되는데, 감독은 동생을 자기 혼자 돌보지 않는다. 이 모든 친구들이 조금씩, 조금씩 시간 내어 동생과 함께 지낸다. 각각의 친구들이 동생에게 겪는 어려움은 각양각색이나 그 어려움이 모두 조금씩, 조금씩 나눠지다 보니 그 어려움들이 모두 유쾌해 보인다.

 

 영화를 보다 보니, 동생의 인생이 참 아깝단 생각이 든다. 그림도 잘 그리고 나름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추고 외국어도 조금조금 여러 개를 말하고. 시설에 방치되지 않고 좀 더 관심을 받으며 돌봐졌더라면 그래도 자기 인생 하나 살아갈 힘은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언니는 얘기한다. 장애를 지녔단 이유로 인생 내내 좁은 세상만 경험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고. 동생과 함께 자신도 보다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고.

 
 노래도 만드는 언니는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콘서트를 준비하고 동생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콘서트에는 오랜만에 아빠도 오고 언니와 형부도 오고 친구들 또한 아주 많이 온다. 장애인. 여러 사람들이 함께 같이 산다면 장애가 그리 큰 문제가 될 수 있을까?

 

 “동서식품”, “커피를 마셔서 잠을 못 잤어요” 라는 말을 자주 하고, 스티커 사진에 꽂혀서 찍고, 찍고 또 찍고 싶어 길가에서 ‘땡깡’을 부리며 영화 스텝들의 애를 먹이는 동생이, 난 이 동생이 무척 유쾌했다. 아마도 그 주변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 주변에 언니만 하나 달랑 있어서 그 모든 동생의 일들을 달랑 혼자만 감당해내고 있었다면 그 둘 모두의 삶이 얼마나 힘겨워 보였을까?


 요즘은 '사람들이 모이면 갈등이 유발될 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 영화는 보여준다. 그래도 사람은 함께 살아야 함을. 모여 살아야 유쾌할 수 있다는 것도. 다시금 아쉽다. 동생이 어렸을 때도 그 주변에 함께 지낼 사람들이 많았었더라면....

 

 

<1991, 봄> (감독 권경훈 출연 강기훈,정형석 : 5월 상영작)

 

 

 이 영화는 주로 강기훈의 이야기입니다. 그 사건 후 어떻게 삶을 견디었을까? 그 억울함을. 그는 될 수 있는 한 자신이 하찮게 여겼던 일들에만 몰두합니다. 그는 삶의 지향이 뚜렷한 사람이었으나, 그 사건 후 내내 자신이 살고자 했던 인생과 멀어지려 애를 썼습니다. 그가 그러는 동안, 그를
그렇게 만든 판검사들은 더 높게 더 높게 출세하고 지금도 큰 소리 치며 잘 살고 있습니다. 그들, 정말로 후회가 없을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왜 죽은 사람들의 편을 들지 않고 죽인 사람들의 편을 들까' 박승희 열사의 일기에는 당시 스물 한 살 청년의 스물 한 살다운 고뇌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유서를 남깁니다. '내 서랍에 코스모스 씨가 있으니 2만 학우가 잘 다니는 곳에 심어주라. 항상 함께 하고싶다'. 유서에 코스모스를 심어 달라니.... 당시 학생 운동가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길가에 꽃을 심고 싶었던 청년들. 하지만 그런 마음 고이 낼 수 없었던 세상에서 청년들은 자신의 몸을 태웁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왜 이리 속수무책 당하기만 했을까? 영화 속에는 박승희 열사의 선배도 나오는데, 나는 이 선배가 자꾸 생각납니다. 88학번. 내 또래여서인지 더욱 그녀의 마음이 되어집니다. 이이는 후배였던 박승희의 죽음 후 세상에 나오질 못 했습니다. 운동권이었던 이이가 세상에 등을 지다니.... 아마 저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만약 내 직속 후배가 분신을 했었다면, 저라고 별 도리 없었겠죠. 그런데... 산다는 게 참....

 

 세월호 아이들이 죽고, 이이도 자신의 아이들과 몇 날 몇 일을 울며 지냈는데, 당시 고3이던 자신의 아이가 서울로 걸어 올라가던 세월호 어머니들께 작별인사라도 하겠다며 길을 나서고, 이이는 아이와 함께 현장엘 가고, 아이는 아버지를 부여잡고 통곡을 하고... 이이는 그렇게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안동에는 김영균 열사의 4년 선배가 그의 추모사업을 지금까지 해고고 있습니다. 농장을 운영하며 수확물들을 장기수 가족분들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보냅니다. 초로임에도 눈빛만은 여전히 청년 같은 그 안동 사람에게서 선비가 느껴집니다. 어쩌면 학생운동은 그 선비정신에 뿌리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강기훈의 후배가 얘기합니다. 학생운동은 보수주의 운동이었다고. 동감합니다. 학생운동이 추구했었던 것이 무엇이었나요? 법치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쿠테타로 권력을 탈취한 야만군인들이 문명인들 위에 군림하며 인간의 상식을 파괴하는 것에 저항했던 것이지요. 지금 우리 사회의 보수라는 단어를 친일파들이 훔쳐 쓰고 있을 뿐이지 보수라는 것은 사실 상식과 법치 아니겠습니까?


 당시 학생 운동가들의 마음은 소박했습니다. 길가에 코스모스 심고 싶었던 젊음이었고 후배의 죽음 후 차마 세상에 나설 수 없었던 섬세하고 여린 마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시절의 내 마음도 그랬겠지요.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보고 난 후에도 자고 일어난 이 아침에도 내내 눈물이 솟는 이유는 여전히 내 안에도 무언가 들어있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 속 모든 이들이 내 안의 그 무언가를 자꾸 끌어내기 때문일 겁니다.

 


<버블패밀리> (감독 마민지 출연 노해숙 마풍락 마민지 : 4월 상영작)

 


 이 영화의 내러이터인 감독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수완 좋은 부모를 만났기 때문이다. 수완? 집과 땅을 잘 사고 잘 팔았다는 얘기! 허나 부모님의 그 수완 덕에 감독은 어려운 청소년기를 맞는다. IMF가 터졌기 때문이다. 그 후 어려움은 지금까지 계속된다. 그런데도 그의 부모는 여전히 부동산에 집착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영화는 그 의문에서 시작된다. 뭐... 이렇게 시작된 영화라면 상식적으로 어떤 흐름이 이어지고 어떤 결말이 날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감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결론이 쫌 엉뚱하단 얘기! (결론은 영화를 직접 보고 확인하시길^^)


 그나저나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에 집착들 하는 걸까? 나 또한 부동산 실수를 좀 해본 사람으로서, 영화를 보는 내내 자책모드! 그러면서도 감독의 부모님이 이해되는 결론! (스포일링 전혀 안 하려 했으나 어째 이렇게 됐네요. 죄송합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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