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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야책_3호

2019 야책문학상 - 3

 

이밥

 

1. 새기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혹자는 그 때가 쥐라기였다 하고 또 다른 혹자는 백악기였다고도 했다. 어떤 가인은 그 시절엔 공룡이 헤엄치고 익롱이 날아다녔다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아무튼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사실관계 하난 명확히 한 후 이야기를 진행해야겠다. 위에 언급된 가인의 노래완 달리 사실 그 시절엔 익룡이 날아다니고 공룡이 헤엄치질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시절엔 익룡도 없었고 공룡도 없었다. 위에 언급된 가인의 노래완 달리, 사실 그 시절엔 온 세상이 새로 가득했었다. 지구에만 새들이 산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우주 전체가 새의 시대였다. 지구의 나이로는 백악기와 쥐라기 쯤이었다.

 

2. 오작교와 불새
얼마나 새가 많았기에 온 세상이 새로 가득 차 있었다고 나는 말하는 것일까? 내 기억이 맞는다면 당시 새의 수는 우주 전체의 모든 별1)과 행성의 수보다 많았다. 왜냐하면 어떤 별이나 행성을 가더라도 새들이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날아만 다닌 것이 아니었다. 물이 있는 행성에선 헤엄을 치고 가스로만 가득 찬 행성에선 가스로 팩을 즐겼으며 심지어 불이 펑펑 튀는 별에도 새들이 날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그 수가 많았던지 해마다 칠월칠석엔 까마귀와 까치들이 견우와 직녀가 - 견우와 직녀 또한 본랜 새였으나 그들에게 내려진 형벌은 새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비행금지’였다 - 만날 수 있도록 그 멀고도 먼 견우성과 직녀성을 잇는 다리를 놨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수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새들에게 금지된 장소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이 별 저 별 온 우주를 구석구석 누비고 다녔다. 지구의 바닷속을 유영하고 바람에 몸을 실어 지구의 이 구석 저 구석을 다니다가도 어느 날 문득 목성으로 날아가 가스팩2)을 즐기고 어느 날엔 태양 속으로 날아들어 태양을 관통한 후 빠져나오곤 했다. 그 행위는 아마도 지금의 인간들이 즐기는 불가마 사우나와 비슷한 놀이였을 것인데, 당시 태양3) 속을 드나들던 새들의 모습은 각각의 태양주변에 그 흔적들이 남아있어서 우주의 호흡주기에 따라 가끔 그 흔적들이 빛을 반사하곤 한다. 나중에 지구에 출몰한 포유류 인간들 중 그 반사광을 목격한 이들은 자신들이 본 그 번쩍거리는 새의 형상을 불새라 부르곤 했다. 태양을 관통하는 불가마 사우나에도 싫증 이 나면 새들은 우리 은하도 벗어나 안드로메다 등 우주 곳곳의 다른 은하들로 날아가고 또 그런 은하들에서도 새들이 우리 은하로
날아왔다.

 

3. 호흡
 그런 새들과 함께 나 또한 이 은하 저 은하 돌아다니며 놀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를 관통한 후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며 반짝거리는 불똥들을 바라보며 잠시 황홀경에 빠져들었는데 ... 아! 저것, 아니 저 새는 무엇이더냐? 내 몸의 두 배는 더 길어 보이는 황4) 하나가 방금 내가 빠져나온 해를 삼키려드는 게 아닌가? 아, 저것만은, 아, 저것만은 막아야한다. 해를 삼키지 않는 것. 그 것은 온 우주에 퍼져있는 새들의 생존과 우주의 질서를 잡아주는 불문율이 아니던가? 해를 관통하며 몸의 외부가 뜨겁게 달구어진 새들은 모두 몸 안으로는 지독한 한기가 올라오기에 - 내가 방금 전 빠져든 황홀경도 그 지독한 온도차에서 비롯된 것이다 - 해를
집어삼켜 몸 안을 데우고자 하는 욕구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강렬히 올라온다는 것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우주가 유지되고 새의 세상이 유지되려면 반드시 해를 삼키는 행위만은 삼가야 하는 것이다.

 

 해의 빛과 열을 오로지 자기 몸으로만 가져가려는 욕구와 행위. 그 빛과 열을 독점하려는 욕구와 행위 때문에 우주는 그 얼마나 긴 혼돈의 세월을 겪었는가 말이다. 빅뱅 이후의 우주는 그 빛과 열이 온 우주로 퍼지고 있기에 질서와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 아닌가! 빛과 열은 어느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그 것은 우주 전체의 것이며 우주 구성원 모두가 고르게 누려야 할 우주 전체의 보배인 것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해를 삼키려는 황을 향해 돌진했다. 황과 충돌 직전 난 깨닫는다. 아, 너. 무. 크. 다. 몸으로 싸울 상대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를 삼키게 두어서도 안 될 일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대책이 전혀 없었던 나는, 이미 그 새에게 몸이 너무 가까이 밀착돼있던 나는, 그저 그 큰새의 품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해를 삼키기 위해 부리를 크게 벌리는 데만 온 힘을 집중하던 그 새는 그 때서야 나의 기척을 느끼곤 잠시 숨을 고른다. 우주의 별들과 행성들과 먼지들 속에 달라 붙어 있던 산소의 분자들이 입자형태로 새의 폐로 들어갔다가 입자형태의 탄소분자들이 우주의 암흑 속으로 사라지는 호흡. 아! 나도 이런 식으로 숨을 쉬는 게로구나. 큰새도 자신의 몸에 밀착돼있는 나의 호흡을 느끼고 있는지, 어느새 그이의 날숨은 나의 들숨이 되고 나의 들숨은 그의 날숨이 된다. 호흡. 큰새와 나는 이제 서로의 호흡만을 느낀다. 고르게 쉬어지는 숨을 보아 큰
새는 부리를 닫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해를 살렸다는 안도감이 밀려 들며 나의 숨은 더욱 편안해진다. 큰새의 숨도....

 호흡이 편안해지니 눈을 뜨지 않아도 주변의 모든 것이 보이고 큰 새의 품속에서도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내 몸은 느낀다. 이제껏 난 아직 이토록 아름다운 우주를 보거나 느낀 적이 없었다. 우주의 모든 해들이 우리 둘만을 비추듯 환히 웃음 짓고 우주의 모든 암흑 물질들도 우리를 편안히 감싸 안는다. 지금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당시 우리를 비추던 우주의 모든 햇살은 마치 먼 길 떠났다 돌아오는 나그네를 맞는 공항의 반짝이는 활주로 조명처럼 안도감을 주었고, 당시 우리를 감싸던 우주의 모든 암흑물질들은 한껏 멋을 낸 어느 다방 마담의 ‘비로도’처럼 황홀했다. 우리 둘은 그 안도감과 황홀경 속으로 끝없이, 끝없이 빠져 들어갔다.

 

 독자들을 위해 굳이 첨언을 하자면, 당시 어떤 새도 어떤 해보다 크지 않았다. 다만 당시의 해들도 당연히 대부분 가스로 이뤄져 있어서 몸집이 큰 새들은 해의 흡입이 가능했다. 삼킨다는 말을 흡입으로 이해하면 된다.

 

4. 지구
 우리가 황홀경에 빠져있던 시간은 무척이나 길었다. 거진 1억5천만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는 기지개를 켰는데.... 아! 우리가 호흡을 나누는 동안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눈을 씻고 보아도 우리 둘 말고는 어느 곳에도 새가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우주에 떠있거나 우주를 유영하는 새는 단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많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는 우리가 호흡을 나누던 태양계부터 조사해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태양. 그 속 구석구석 어느 곳을 뒤져봐도 새는 없다. 수성. 금성도 모 두 마찬가지. 혹시 이 태양계에선 어떤 새도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조바심으로 바짝 말라드는 마음을 달래며 지구로 날아들었는데, 아! 새들이 날아다닌다! 그런데 모두 작은 새들뿐이다. 우리가 호흡을 나누기 전에는 이 지구에도 우리 둘만큼 큰 새들이 날고 헤엄쳤는데, 그 큰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까치야 이 지구에는 너희처럼 모두 작은 새들 뿐이로구나. 우리처럼 큰 새들은 모두 어디에 있니? 지구에서 처음으로 만난 새는 까치였다. 먼 옛날에도 까치는 먼 곳에서 찾아오는 이를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고 누구보다 먼저 소리를 지르곤 했다. 당신들은 도대체 어디서 오셨기에 아직도 이렇게 큰 몸을 갖고 계시나이까아악 까아악. 지금 세상에도 이런 큰 몸을 가진 새가 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아까아악. 까치는 신기한 듯 연신 우리 몸 주변을 휘휘 돌며 울어댄다.

 

 까치야, 사실 우리는 1억5천만년 동안이나 우리 둘만의 황홀한 세상에 잠들었다가 이제야 깨어났단다. 그 황홀경은 어찌나 깊었던지 우린 우리 주변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까치야 네가 안다면 꼭 대답해주어라. 큰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이냐? 아니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이까 큰 새들이시여까아악? 님들께서 빠져들었던 그 황홀경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우주 전체의 지구화를 전혀 모르고 계셨단 말입니까아악. 까치에게 우리 둘이 나누었던 밀착된 호흡과 그로부터 빠져 들어간 황홀경을 얘기해봤자 어쩐지 미친 새소리나 들을 게 뻔한지라 우리는 그저 까치의 다음 얘기나 기다리는데....

 

5. 지구화 - 까치가 들려준 이야기
 우리 둘이 황홀경을 나누던 지난 1억5천만 년 동안 우주에는 지구화가 일어났다. 1억5천만 년 전 우주에는 약 10조개 정도의 지구 같은 행성들 - 대지와 물과 공기의 밸런스가 적당한 행성들 - 이 있었는데 당시 그 행성들은 새들에겐 다른 별들에 비해 특별할 것 없는 별들이었을 뿐이었다. 태양에서 불가마 사우나를 즐기고 목성 같은 가스행성에선 가스팩을 즐기듯 지구같은 행성에선 형형색색 다채로운 풍광을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지겨워지면 또 다른 별이나 행성으로 날아가면 그만이었으나....

 

 어느 세상에나 새로운 질서를 거부하고 구시대로 회귀하려는 집단은 있는 법이다. 70억년 전 일어난 빅뱅은 구시대의 혼돈과 무질서를 일거에 깨트리며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켰다. 이 새로운 우주에서는 별들과 행성들과 먼지들 그리고 암흑물질들까지 서로가 서로를 위해 생성과 소멸을 자연스레 이루어내었고 새들 또한 자신들이 언제 어떻게 태어났는지 인식하지 않은 채 그들의 현재만을 즐기다가 어느 날 문득 우주의 암흑으로 또는 먼지로 분해되는 삶을 사는 것 뿐이었다. 먼지나 암흑물질이 되었다가 언젠간 행성이 되고 별이 되고 새가 되고 그런 후 또 소멸되고 생성되는 그런 질서였다. 이러한 질서 하에서는 별이 행성보다, 행성이 먼지보다, 먼지가 암흑보다 더 우월하다 느낄 필요도 없으며 생명으로서 살아가는 새를 부러워하는 무생물들도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가 또 다른 모든 존재의 생성원인이었고 소멸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빅뱅이라는 우주의 혁명이 추구한 것은 대략 그런 질서였고 70억년 이상 그러한 우주가 자연스레 팽창하고 있었으나, 혼돈과 무질서의 우주에 너무나 익숙했던 어떤 입자들 또한 새로운 우주에도 그대로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새로운 우주를 구성하는 별들과 행성들과 먼지들과 암흑물질들 속에도 이런 입자들이 조금이나마 섞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입자들이 조금 혹은 많이 섞였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즉, 새로운 우주의 모든 구성원들은 우주 전체적 관점에선 조화와 평화라는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였으나 각자의 내면에는 혼돈시대의 욕망들이 조금씩이나마 들
어있었다. 다만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빅뱅에 적극 참여하거나 동조했던 입자들이 우주 구성원들 각자의 몸속에서 혼돈의 욕망들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새들의 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모든 새들의 몸속에도 혼돈의 입자들이 아예 섞이지 않을 순 없는 일이었다. 새에 따라 그런 입자들이 많거나 적게 섞이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빅뱅 이전의 우주에서는 누구나 빛과 열을 독점하려했었다. 빛과 열을 발하는 별이 나타나면 어느새 모든 물질들이 달려들어 그 해를 삼켜버리려 했다. 모두들 그 별 주위로 모여들어 이전투구를 벌이곤 했었다. 빅뱅 이후 새로운 우주에선 어느 누구도 서로를 삼킬 수 없었으나 빛과 열을 삼키고 싶다는 혼돈우주의 성질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어느 몸이던 어느 사회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후에도 반동의 입자들을 완전히 없앨 순 없는 것이다. 개별 입자들 또한 소립자들의 조합이고 소립자들의 입장에선 그들이 구성하고 있는 입자들 내에선 신구의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떠한 새 질서에서도 구질서를 욕망하는 입자들을 완벽히 없앨 순 없다.
어느 한쪽의 완벽한 제거는 결국 전체의 제거를 의미할 뿐이다. 다만 결국엔 공멸을 불러올 이기적 욕구 추구 입자들을 단속하며 끝없이 그들에게 공존의 가치를 이입시키는 것, 그것만이 공존을 위한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새로운 우주는 다행히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속의 힘과 귀화의 노력은 언제나 같은 크기로 유지될 순 없는 법이다. 힘과 노력이 느슨해지는 때도 반드시 있다. 나와 사랑을 나눈 후 나의 동행이 된 큰새가 해를 삼키려 했던 것도 일시적으로 그 몸에 들어 있던 이기적 욕구 추구 입자들이 발한 탓이었다.

 

 70억 년의 시간은 우주의 시간으로도 아주 오랜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며 그 탐욕의 입자들을 제어하지 못하는 새들이 나타났고 어느 순간 그 새들은 제법 큰 무리를 이루었다. 물론 그 새들은 온 우주의 해들을 삼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세력은 우주 전체의 질서와 한판 붙기엔 아직 부족했다. 해의 빛과 열을 탐했으나 우주의 질서에 맞장 뜰 수 없었던 그들이 모여든 장소가 지구형 행성들이었다. 왜인고 하니, 지구형 행성들은 그들의 항성인 해에서 쏟아지는 빛과 열들을 상당히 많이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형 행성들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엔 해의 에너지가 담겨있었다. 모든 풀들과 나뭇잎들엔 언제나 해가 그득그득 담긴다. 탐욕의 새들이 그곳으로
모여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치자. 하지만 그들의 탐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새들이 그곳에서 자라는 풀들과 나무들의 성장과 소멸에 맞춰 태양의 빛과 열을 흡입했더라면 우주 전체의 큰 새들이 사라지는 대사건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각각의 지구들로 모여든 새들은 여전히 우주를 날아다니던 다른 새들이 필요했다. 풀과 나무들이 자라려면, 더 많은 풀과 나무들이 생기려면, 더 많은 흙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 온 새들은 끝없이 우주의 새들을 유혹했다. 빛과 열을 흡입할 수 있다고. 첫 새를 유혹하기 힘들었을 뿐 가면 갈수록 지구형 행성들에는 새들이 모여들었다. 나중에는 유혹도 필요 없었다. 탐욕의 경계는 한번 무너지면 끝나는 법이다. 물론 당시의 우주에서도 그랬다. 탐욕이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도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즉, 지구로 모여드는 모든 새들에겐 환상이 있었다. 내가 반드시 다른 모든 새들을 제치고 모든 풀과 나무를 먹어치우리라. 내 밑에 쓰러진 다른 모든 새들을 땅에 묻고 더 많은 풀과 나무를 키우리라. 그 풀과 나무마다 태양의 빛과 열을 그득그득 채워 놓으리라. 그리곤 그들은 새로서의 정체성마저 버리게 된다. 해의 빛과 열만이 오로지 존재 이유가 된 그들은 우주로 날아갈 필요가 없어졌고 그에 따라 우주에 대한 관심도 아예 사라졌다. 즉, 그들은 그들에게 있던 모든 깃털들을 뽑아 땅에 묻기 시작했다. 해의 빛과 열만 바랐던 그들은 그들의 깃털들마저 거름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깃털을 스스로 뽑아버린 새들의 모습은 스스로 괴상했다. 지금의 사람들이 괴물을 그리라고 하면 그리는 그런 모습이 되어 버렸다. 아마도 후대에 나타난 사람들이 파충류라고 부르는 공룡들은 그 스스로 깃털들을 뽑아버린 그 새들일 것이다. 사실은 조류인데 말이다.

 

 오로지 빛과 열만 원하다 공룡이 돼버린 새들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또한 보다 많은 풀과 나무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내 반드시 저놈을 죽여서 거름으로 만들리라. 나만의 빛과 열을 담아낼 풀과 나무를 위해 쓰리라. 너 또한 이미 풀과 나무를 먹고 성장했기에 네 몸 자체에도 빛과 열이 그득하리라. 나 네 몸속의 빛과 열도 모두 먹어주리라,

 

 그런 현상이 1억5천만 년 전 온 우주에서 벌어졌답니다까아악. 그걸 지금은 모두 우주의 지구화라 부른답니다까아악. 그 아름답던 새들이 민몸뚱아리 공룡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먹었다니.... 그 광대한 우주를 어디든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새들이 스스로 날개를 없애버리고 우주 전체로 보면 먼지보다 작은 지구 안에 스스로 갇혀버렸다니. 내 비록 내 정확한 나이는 모르나 내 사는 동안 이렇게 슬픈 일이 있었나 싶어 까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데 내 동행 황이 나를 그이의 날개로 품어준다. 너무나도 큰 슬픔 때문에 또다시 황의 품속에서 호흡을 나누고픈 욕구가 크게 들었으나, 이 괴로운 현실을 놔두고 연인의 품속에 안겨 또 다른
1억5천만 년을 보낼 순 없다. 안락함이 부르는 욕구를 누르며 겨우겨우 까치에게 그 뒷얘기를 청한다. 얘, 작은 새 까치야 그렇다면 그 공룡들이라도 이 지구에 있어야 할 텐데, 어찌하여 내 눈엔 깃털을 뽑아버렸다는 그 큰새들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도대체 그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이니? 너 또한 몸은 작으나 새는 새인데 어찌 너처럼 작은 새들은 여전히 새의 몸을 갖고 있는 것이니? 큰 새이시여, 님께서는 정말로 그 황홀경인지 뭔지 하는 깊은 잠에 드셨던 것이 분명하군요까아악! 어떻게 그 긴 시간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하나도 모른 채 그렇게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나이까아악? 그 황홀경이란 게 무엇인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구만요 까아악! 허 요녀석 말투 좀 보게. 까치의 말투는 어느새 우리 둘을 바 보 취급하듯 놀리는 투가 되어간다. 하기야 그도 그럴 것이 1억5천만 년의 그 긴 세월 우주가 망가지고 자신의 종족들이 모두 스스로
를 파괴하고 있는 동안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 한 채 황의 품안에서만 홀로 안락하였으니 까치의 핀잔을 고깝게만 들을 순 없는 일이다. 온 우주를 훨훨 날아다니던 내가 그깟 말투 하나에 고까워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우주를 품었던 호연지기를 발동하여 마음을 다지며 까치의 얘기를 듣는다.

 

<다음 호에 계속>

1) 별, 해, 태양, 항성은 같은 개념으로 썼다. 다만 ‘별’은 행성을 지칭할 때에도 문맥에 따
라 가끔 사용했다.

 

2) 가스팩: 사실 얼핏 보기에 목성은 엄청나게 커 보이지만 그 모습을 이루고 있는 재료들
이 대부분 가스들이라 그 속에서 날갯짓을 하다보면 끈적거림과 톡 쏘는 탄산의 상큼
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서 당시 목성은 우주 전체에서 새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행락
지였다. 가스팩은 지금의 인간들이 즐기는 머드팩 같은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그렇
다면 목성은 지금의 충남 보령쯤 되는 셈이다,

 

3) 꼭 우리 태양계에만 있는 태양을 말하는 건 아니고 우주 곳곳에서 자기 스스로 몸을 태
워 빛을 발하는 진짜 '별'들을 지칭함.

 

4) 봉황의 암컷을 말한다. 봉황의 수컷은 봉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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