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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야책_4호

한결 같음은열정의 또 다른 이름

연극인 차지성을 만나다

 

김가희

 

지난 3 호박이넝쿨책 낭독 팀은 처음으로 극장에서 유료 공연을 올렸다. 다소 

모해 보이는 일을 벌일  있었던 것은 바로 극장 대표 찬스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극장  대표이자 극단 더늠의 차지성 대표를 크고 작은 낭독 공연이 

잡힐 마다 불러서 우리 하는    달라고 조른 것이   번이 아니었다. 

아마추어들끼리의 모임인 책방 낭독 팀은 동네 도서관이나 축제 등에서 공연할 

기회들이 늘어났다. 그럴 때면 공연을 앞두고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답답하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미안함을 무릅쓰고  대표에게  달라고 

부탁을 여러  . 무리한 부탁에도  대표는 기꺼이 시간과 열정을 내서 우리가 

생각한 시간을  뛰어 넘어서까지 배우    명의 연기를 끌어내주곤 하였다. 

이상하게도 앞에서 연기를 하면 나를 잊고   역할에 몰입할  있었다. 

그는 누구나 배우가 되게   있는 힘을 지닌 신기하고 대단한 연출가다. 

그런 차지성 대표를 정릉야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안녕하세요. 극단이 곧 20주년이 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극단을 시작하게 되었고 

성북으로 오신 지는 얼마나 되나요?

 

2001년도에 극단을 시작했으니 20년이   가죠.  때는 대학로에 있었어요. 

2005년에 성북으로 왔고 2011년에 지금 자리에 터를 잡았어. 지금 생각하면 

20 중후반의 어린 친구들이었죠.  당시 극단에 어가면 청소하고 포스터 붙이고  

무대에  기회가 없어서 우리끼리 극을 올려보자고 해서 시작했어요.

 

 

극단 더늠의 대표이신데 ‘더늠’의 뜻은 뭔가요?

 

더늠은  늘다라는 뜻이에요. 국악 용어인데 선생님의 소리를 뛰어넘는 소리를 

일컫는 말이죠. 너의 더늠이 뭐냐?” 하고 물으면 춘향가 ~입니다.”라고 대답하는데, 

기존의 소리를 새로 짜거나 추가해서 것을 뛰어 넘는 것을 의미해요.

 

 

그런 뜻인지 몰랐는데 하나 더 배우게 되네요. 연극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중학교 여름방학에 보충수업을  때였어요. 어느  선생님이 부르셔 보충수업 할래? 

극단가서 놀다올래? 하셔서 그길로 다녀오겠습니.” 했죠. 

아동극에 배역이 필요했었던  같아요.  이후로 극단에 웃기웃하다가  3 때가 

되었는데 극단이 없어졌어요. 놀러갈 때가 사라 사건이었죠. 연극이라는   보고 

싶었는데 극단이 사라지니까 극영화과는 인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과로 진학했는데, 

결국에는 연극 동아리를 추천받아 연극을 하게 되었죠. (웃음) 배우로 시작해서 연출도 

가끔 하다가 지금은 연출과 극작이 중심이 되었어요.

 

 

제가 차 대표님 극을 여러 편 봤는데 대본이 좋아요. 

글을 참 잘 쓰신다고 생각했는데 글 작업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쓰는 거를 배우지 못해서 많이 읽은  같아요. 

셰익스피어  모든 구성은  끝났다.” 말이 있잖아요. 혼자서 구성 카피도 

해보고 했는, 그게 나중에 보니 문창과에서 하는 방법이더라구요. 

작품을 베껴서 쓰기도 해보고 …. 모든 창작의 길은 비슷한  같아요. 

 이렇게 썼지?  이렇게 구성을 했지?생각을 많이 했죠. 

제가 선생님으로 모시는  박근형 선생님이신데 대본을   달라고 해서 

가져가면 나중에 이나 마셔.” 하셨어요. 그렇게 단련이 되었죠. 

칭찬 받는  어색한 성격이고   먹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려서부터 강하게   아요. 제가 말썽을 엄청 부려서 혼나면서 컸거든요. (웃음)

 

 

성북구 주민이면 한용운 선생님을 그린 뮤지컬 <심우>는 알고 있을 것 같아요. 

그 동안 많은 창작극을 하셨는데 그 중에 가장 아끼는 작품이 무엇인가요?

 

 모르겠어요. 하나를 꼽자면 <쇠점터 : 가난에 관하여>라는 작품인데 아직 

마무리를 못했어요. 쓰기 시작한지 7~8 되었는데 묵혀 놨다 다시 쓰고 그러다 

덮어 놓고 하는 그런 작품이에요. 대본을 쓰기 위해 처음으 인터뷰를 해본 작품인데, 

노인정에 가서 인터뷰하면서 놀랐어요. 입식 교육과 똘이 장군 보면서 자란 

세대로 북한은  늑대고 남한 피해자라고 생각했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얘기를 

듣다 보니 그게 니었어요.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고향에서 멀리  갔다고 해요. 

국군을 따라  길을 가면 뒤에서 북한군 탱크가 오고, 그런 식이었는데, 북한군 

해코지를 하는  아니라 도시락을 나눠줬다고 해요, 실제로 미군 행기가 제일 무서웠고 

미군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해요. 어떻 보면 엄청난 죽음들을 마주했지만 

누구에 의해 죽었는지 원망할 상대 모호한 죽음들과 가난이 존재했던 거죠. 

가난의 문제를 시대상에 여보고 싶었는데 페이지만 늘어나고 공연도  올리고 …. 

우리는  난할까? 물질적인 가난만 가난일까? 사상적 가난? 세대 간의 가난?

상대적 가난?  질문을 많이 하게 됐어요.

카페에서 우연히 쇠로 만든 조형물 속에서 꺼져가는 불을 봤는데 장간의 마지막 불길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대장간의 마지막 모습이 땠을까를 생각하다가 대장간에 관해서 

써보자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게 점점 가난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해갔어요. 

먹을  없는 전쟁 중에 부산 제일제당이 생겼다고 해요. 설탕 얘기를 같이 녹여내서  

빈곤과 탕이라는 달콤함이 부딪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죠. 힘을 쓰며 장인 신으로 

만들어지는 물건과 상업적인 달콤함이 공존하는 아이러니를  싶었어요.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상을 그린 작품들이 많은데 그런 것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쇠점터> 쓰면서 내가 배운 역사와 실제가 너무 달라서 화가 났어요.

나름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몰랐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후에는 

역사나 시대에 대해 뒤집어 보게 되었어요. 

역사가들이  생각으로 이렇게 썼을까? 시대를 생각하게 되고, 경제, 정치와의 관성이나 

미국 정치나 세계정세도 바라보게 되고 자본이 어디서 흘러 어오는지도 공부하게 되고요. 

쓰면서 계속 배우는  같아요. 모르는 투성이죠. 실수도 있고 틀린 것도 있어요. 

틀린  알려주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고치죠.

 

 

이십 대 때와 비교해서 연극하기에 달라진 점이 있나요?

 

힘든  똑같은데 배우들이  바빠진 같아요. 예전에는 극단이 아니면 공연할곳이 없었죠. 

극단 시스템이니까 극단  자기 성격이 있었어요. 최근에는 극단 시스템이 무너져서 

 극단을 제외하면 1시스템으로 많이 움직여요.

연출가나 극작가 중심으로 몰리고 개인프로젝트가 많아졌죠. 예전에  작품을   이상 

인해서 준비했다면 요새 배우들은   준비 같아도 2~3 작품을 같이 하니까 작품의 질은 

아무래도 낮아지겠죠. 전문 예술에 대한 지원이 줄고 대신 시민연극 등의 시민 예술에 대한 

지원이 늘어났어요. 시민 예술도 중요하지만 평준화가 되면 깊이 있는 작품에 대한 구를 채우기에 

어려운  같아요. 시민 예술과 전문 예술이 같이 발전해 나가야 해요. 대학로 기획시스템으로 

넘어가고 중견단체들도  사라지고 있죠. 극단들이 많이 살아남았으 좋겠어요. 좋은 사람들이 

같이 하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성북구 주민들과 연극으로 많이 만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장수마을 주민들과 연기도 해보고 구민회관 입주단체로 주민들과 접점 찾기도 했어요. 

장위동 주민들과 시민 연극 교실도 했죠. 극단이다  예산 부분이 많이 힘들고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도 아쉬어요. 마을살 연구도 진행해봤어요. 삼선동의 연습실들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려고 기초조사를 했어요. 생각한대로  이루어지는  아니지만 작은 성과 하나라도 소중하게 느껴져요.

시민극단은 즐겁게 하는 것과 작품 결과 사이에서 적절히 조절하는 제일 어려운  같아요. 

극단은 힘들어도 작품이  나오면 고생했다는  마디에  풀리는데 시민극단은 그렇게까지 심하게 

연습을    조건이 아니죠.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처절한 싸움을 버텨내야 하는데 쉽지 않죠.

 

 

차 대표님이 생각하는 연극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했던 말인데 연극의 매력은 소멸에 있어요. 

무대에 순간 살고 사라지는 , 순간성이기도 하죠. 

영상으로 남긴다 해도 맛을 느낄 수는 없어요. 추억이  수는 있지만 

무대 위에서의 순간의 기는 사라지는 거죠. 하나의  다른 세상이 만들어지고  

순간 이루어졌다가 사라지고 하는  매력이 예술적인  아닌가 싶어요.

저는 관객과 만나야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고흐가 그림을 열심히 그렸어 

혼자만 간직하고 있다면 그건 아직 예술성을 띄지 않는다고 생각해. 사람을 토대로 해야죠. 

사람을 위해서, 누군가를 위해서, 시대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서 …. 

그런 점에서 예술이 공공적이고 사회적인 생산성이 있다고   있죠.

 

 

남은 올해 활동과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에 어르신들을 위한 극을 올렸어요. 3 공연인데 11시부터  기다리는 분들이 계셨어요. 

이분들에게 약속이 하나 생긴 거잖아요. 노인들도 약속이 많은 그런 삶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11 22일에는 민주화운동을 하신 계훈제 선생님이 기부해서 만든 극장에서 

 1 연극제가 열리는데 4.19 관한  <시선> 초대받았어요. 

12 25일에는 단원들이 크리스마스 파티로 리딩 공연을  거구.

그리고 극단 20주년을 준비하고 있어요. 되돌아봄, 바라봄, 내다봄이라  단계로 준비하고 있는데 

 동안 해왔던 작품들을 훑고 있는 단계에요. 창작극 준비도 하고 있고 앞으로 극단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단체의 성격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어요. 중심은 <왕을 바라다>  같아요. 

역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역사극이죠. 극단이 어떻게 회를 바라볼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갈지 준비하는 단계에요.

 

 

민감한 질문일 수 있는데 연극계 미투에 대한 생각을 말해주시겠어요?

 

연극계에  담고 있는 연출가로서 터질  터졌다라는 생각이죠. 히려  민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찍 터졌어야 하는데, 예술이 사회나 IT 끌려가는 꼴이라 안타까워요. 

예술가들이 먼저 말하고 앞서 나가야하는  오히려 뒤떨어지고 사회현상을  따라가는  문제죠.

 

 

인간 차지성은 어떤 사람인가요? 2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게으르고 이불킥을 많이 하죠. (웃음)  이렇게 살았어?  그런 이야기를 했어?  그런 행동을 했어? 

매일  이불킥을 많이 해요. 20 후에도 계속 공연하고 싶어요. 연극은 생각도 깨고 젊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일이에요. 머리가  굳고   있을지가 문제죠.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지만, 

예술은 자기와의 경쟁이 제일 니까요.

 

 

책방이나 낭독극 멤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지금처럼 이어가면 좋겠어요. 학교를 만들고 싶은 꿈도 시작하면 좋겠구요. 희곡을 읽는 것은 간격을 보려고 

노력하는 거죠.  재미에 빠지면  빠져 나와요.  재미에  빠지시기를 바라요.

 

 

 

그의 연극 이야기, 인생 이야기에 푹 빠졌다가 나온 즐거운 시간이었다. 농담처럼 던지는 그의 엉뚱한 말 속에서 

선문답처럼 뼈 있는 그의 성찰이 느껴진다. 안 해본 알바가 없다며 들려준 그의 알바 경험담에서부터 

청년, 노동, 예술 정책, 그리고 예술관까지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의 건강한 세계관이 느껴져 자신 만의 길을 

잘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담지 못해 아쉽고 앞으로의 길이 지금보다는 

좀 더 평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