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야책_4호
야책문학 - 시 3
호박이넝쿨책_야책
2020. 12. 5. 23:02
<찬란>
이혜성
무채색의 시간들
무채색의 공간들은 항상 그 자리 그대로
언젠가 나 덮쳤던 그날
세상에서 가장 추웠던 날
세상에서 가장 시리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무너진 날
못내 아쉬워서 오늘도 쓰린 가슴 붙잡고
나는 사는 동안 한이 가득한 숨만 거칠게 내어 쉬며
어찌 날 두고 돌아서나
어찌 모질게 고개를 돌릴 수 있었나
모질게 돌아서 가는 길 내가 어른거려 헤매진 않았나
원망스러운 그대 마지막 모습 꺼내어 미워하다가
그대 또한 슬픔에 겨워 마음이 무거웠겠지
미어지는 온몸 힘주어 돌아섰겠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들로 나를 위로하오
그래도 그대는 안녕하는 방법을 알아서
그나마 마음 안아줄 수 있었겠소
내 세상이 무너졌던 그날이
다시 날 향해 고요하고도 거칠게 다가올 때
난 과연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을까
살아가는 동안 추억 고이 마음에 잘 심어서
꽃피워서 그간의 이야기들 한 아름 안고 가겠소
잊기엔 너무 아름다워 숨길 수도 없소